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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13.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데레사의 여정③

완덕, 성성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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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덕, 성성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여정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서 갈등

수도서원을 발한 후 중병을 앓았던 젊은 수녀 데레사는 점차 건강을 회복하면서 그간 겪었던 여러 가지 신앙 체험을 바탕으로 아빌라의 여러 계층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적으로나 영적으로 매력적이고 천성적으로 사교적인 데다 사람을 좋아했던 젊은 데레사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우정에 집착했습니다. 당시 성녀는 그렇게 사람들과의 우정에 집착한 나머지 자기 힘만으로는 그런 애정을 깨고 하느님께 온전히 사랑을 드릴 수 없다고 여기며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성녀는 자기 내면 깊은 곳에서 전인적인 응답을 요청하시는 주님의 신비로운 부르심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내적 싸움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이런 성녀의 내적 고민은,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자신이 수도서원을 통해 맺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결혼으로 보고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배타적, 독점적 사랑을 주님께 드리지 못했다는 데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은 예수님과의 총체적 우정의 관계

그런데 어느 날 성녀는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던 어떤 사람과 만나 대화하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첫 번째 현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성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엄한 얼굴로 나타나셔서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당신께 불만스러운 것인지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육안으로 뵌 것보다도 더 똑똑히 영혼의 눈으로 주님을 뵈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무척이나 무섭고 불안해서 다시는 그분과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자서전 7,6). 이 신비 체험 후 젊은 수녀 데레사의 마음은 예수님을 향한 방향이 더욱 확고해져 갔습니다. 성녀는 수도서원이 그 서원을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그리스도와 맺어준다는 진리를 깊이 알아들었습니다. 당시 성녀는 의식 속에서 현시를 통해 아주 분명히 감지했던 주님의 목소리를 기억했습니다. “그런 대화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이렇듯 신심 깊은 영혼들의 신랑이라는 그리스도에 대한 관념은 이 사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성녀의 영성에서 더욱 명료해져 갔습니다. 그때까지 지니고 있던 하느님에 대한 추상적 관념 역시 모든 것을 보시는 그리스도, 당신께 모든 애정을 드리지 않아 화가 나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돼 갔습니다.

성녀에게 하느님의 구원은 영혼을 찾아오시는 ‘신랑’이자 ‘벗’으로서 그리스도 모습 아래 드러났습니다. 결국, 성녀는 이 그리스도 현시 체험을 통해 자신이 그분에게서 깊이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자서전 7,18). 성녀는 종교가 단순히 어떤 이념이나 윤리 또는 완수해야 할 일련의 규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물에 집중돼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신앙이란 예수님과의 총체적 우정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1554년 사순절의 회심

그러나 성녀의 삶에서 주님과의 관계에 더욱 획기적 전기를 마련해준 사건은 그보다 훨씬 이후인 성녀가 40세 되던 1554년 사순절에 있었습니다. 당시 성녀는 수녀원에서 사순절 예식에 사용하기 위해 구해 놓은 예수님 상(像)을 경당에서 보게 됩니다. 그것은 상처투성이인 예수님을 묘사한 성상(聖像)으로 인류를 위해 숱한 고통을 참아 견디며 밧줄에 묶인 채 채찍질을 당하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날 성녀는 이 성상을 바라보며 가슴 밑바닥부터 전율을 느끼고 영혼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녀는 예수님이 당하신 처절한 고통을 바라보며 우리를 향한, 아니 자신을 향한 주님의 헤아릴 길 없는 사랑을 깨우쳤으며 동시에 그런 사랑에 보답은커녕 그분을 잊은 채 배은망덕하며 살아온 지난날 자신의 모습을 대면했습니다. 그리고는 슬픔에 휩싸여 그 성상 발밑에 엎드려서 하염없이 회심의 눈물을 흘리며 더는 주님의 마음을 상해 드리지 않는 은총을 주십사고 애원하고 또 애원했습니다. 통상 이 사건을 ‘1554년의 회심’이라 부르는데, 이때 성녀는 존재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존의 모든 것이 뒤집히는 체험을 하며 주님을 향한 여정에 전기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수도자로 사는 삶에 더욱 철저히 투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는 회심 속에 있는 완덕

성녀의 삶을 따라가며 보게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주님을 향한 성녀의 여정이 강생하신 하느님, 즉 예수님을 끊임없이 알아가는 여정이자 그분을 향한 회심의 연속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오로(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의 체험)를 비롯해 성 아우구스티노(밀라노에서 로마 13,13-14에 대한 체험) 같은 분 역시 주님과의 강렬한 만남을 체험하며 일대 회심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체험 이전과 이후의 여정을 보면 회심은 결코 일회적이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혼신을 다해 진리를 추구했고 진리이신 주님을 만난 후에도 여전히 더욱더 그분의 사랑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고 세상에 전하려 노력했습니다. 성녀 데레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분의 여정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 이어져 왔고 1554년의 회심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이런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을 간파한 니사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그리스도인의 완덕을 ‘에펙타시스’(epektasis)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는 한쪽 발을 디딘 상태에서 다른 쪽 발을 앞으로 내뻗는 자세를 표현한 그리스어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3장 12절(“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권고를 담고 있는 영성적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신자가 지향하는 ‘완덕’(完德)은 모든 면에서 완전한 성덕을 갖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신앙 여정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영성 생활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삶이라고 합니다. 성성을 향한 목표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본성적 이기주의의 성향을 거슬러 오르지 않으면 세파에 밀려 어느새 우리의 삶은 저만치 떠내려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향해 매일 끊임없이 회심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했듯이 우리 또한 매일 우리의 출애굽을 감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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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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