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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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19.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데레사의 여정 ⑨

우리 가운데 거닐던 공생활 자체가 ‘구원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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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레사 성녀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통해 우리 가운데 거닐던 예수님을 사랑했다. 사진은 예수님이 참행복을 선언하신 곳으로 알려진 갈릴래아 호수 주변 언덕의 봄 풍경. 【CNS】

예수님의 공생활에 대한 성녀의 각별한 사랑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활동을 보려면 무엇보다도 그분께서 공생활 동안 하셨던 말씀과 행적에 주목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성녀 데레사는 자신의 영성생활에서 주님의 인성(人性), 즉 ‘인간’이신 예수님께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무엇보다 공생활 동안 보여주신 예수님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사랑으로 드러났습니다.

우선, 성녀는 기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했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생애로 가끔 되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야말로 우리에게 온갖 선이 왔고 또 올 테니 말입니다.(자서전 13,13) 성녀에게 주님의 공생활은 이미 그 자체로 ‘구원 사건’입니다. 성녀는 성경을 읽고 강론을 통해 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예수님의 공생활이 갖는 깊은 의미를 알아갔습니다. 성녀는 특히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만나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비롯해 당신의 비유 중에 소개된 여러 인물, 예를 들어 막달레나, 사마리아 여인, 마르타, 마리아, 사도들, 돌아온 탕자, 태생 소경 등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각각의 인물이 지닌 의미와 교훈을 자신의 영성생활에 체화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성녀는 또 공생활 동안 그리스도께서 하신 수많은 말씀을 기억하며 이를 자신의 여러 작품에 수없이 인용하곤 했습니다. 성녀는 공생활 동안 말씀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신 ‘스승(Maestro)’ 예수님의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권능을 통해 사람들이 앓고 있던 영적, 육체적 병을 고치는 가운데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고 동시에 말씀을 통해 권위 있게 가르치셨습니다. 성녀는 예수님께서 하신 스승으로서의 이 두 가지 모습을 보면서 복음서가 간직한 문자적인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보다 깊은 의미, 즉 영적 의미들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성녀가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주목한 그분의 각별한 모습 중에는 우리의 흥미를 끄는 대목도 있습니다. 성녀가 살던 16세기는 지극히 남성중심 사회이자 교회였으며 여성에 대한 차별을 넘어서 혐오가 만연하던 시대였습니다. 성녀는 그런 잘못된 시대정신을 거슬러서 여인들의 권리를 옹호했고 공생활 동안 늘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을 사모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여인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특별히 그들을 마음에 두셨던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 근거를 찾았습니다. “주님, 세상을 거니셨을 때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여인들에게 호의를 베푸셨고 남자들보다 그 여인들 안에서 더 많은 사랑과 믿음을 발견하셨습니다.”(완덕의 길 4,1)

또한 성녀는 어느 신비체험 중에 예수님에게서 들은 말씀을 다음과 같이 가감 없이 전하기도 했습니다. “학자들과 남자들은 나와 사귈 줄 모른다. 나는 곤궁한 자로 오지만 그들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단다. 그래서 내가 쉬고 또 내 것들을 나누기 위해 여인들을 찾아왔다.” 신부님, 수사님들을 비롯해 남자 신자들이 들으면 복장이 터질 일이지만, 교회를 구성하는 신자의 70~80가 여성인 것을 고려하면 영 틀린 말은 아니지 싶습니다.



오늘날에도 현재화되는 예수님의 공생활

성녀의 여러 작품에는 예수님의 공생활에 대한 언급이 산재해 있습니다. 성녀는 여러 현시 체험을 통해 관상한 주님의 모습을 “이 세상에서 거니시던 분”으로 소개하곤 했습니다. 이렇듯 성녀는 공생활을 통해 우리 가운데 거닐던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그분과 동시대에 함께 살 수 있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고 서운해 하진 않았습니다. 성녀는 자신이 몸담고 사는 이 현재를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예수님과 교감할 수 있는 구원의 순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거니시던 시대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저 웃고 말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안에서 그분을 참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입니다.”(완덕의 길 61,3)

그렇습니다. 성녀가 꿰뚫어보았듯, 예수님의 공생활은 성사(聖事)를 통해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연장됩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성사들에 호소합니다. 당신께서 거기(성사)에 두신 효능을 발견할 때 싱싱한 믿음이 솟아납니다. 그는 우리의 상처를 외적으로 막을 뿐 아니라 그것을 온통 없애버리는 이 약, 이 효능 있는 향유를 우리에게 남겨 주신 당신을 찬미합니다. 이런 현상은 그를 경탄해 마지않게 합니다.”(자서전 19,6)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러 성사를 통해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성녀는 2000년 전 역사의 어느 순간에 사셨던 예수님과 오늘을 사는 우리가 믿는 믿음의 그리스도 사이에서 이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가 성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예수님 공생활을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여전히 오늘도 신비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사건으로 바라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성녀가 묵상했던 신약성경의 여러 인물은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서 취해야 할 다양한 태도들을 미리 보여주는 예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어느 때는 자신을 유다로 느꼈고, 어느 때는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던 사마리아 여인으로, 또 어느 때는 주님 곁에서 그분을 관상하던 라자로의 누이동생인 마리아로 자신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뿜는 광채에 휩싸인 바오로라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성녀는 신약성경의 인물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영적 진보를 위해 자신이 취해야 할 모습이 반영되어 드러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 또한 성녀와 같은 거룩한 원의를 갖는다면 그들을 바라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만나러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성숙시키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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