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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27-칠극(七克)이야기 (2)

선이 커지면 악은 작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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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


내가 칠극(七克)을 읽으면서 지향했던 것 중 하나는 이 글을 먼저 읽었던 우리 신앙선조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었다. 아마 나도 유학을 공부했기에 어느 정도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조선시대 말엽, 사회적 혼란과 함께 그동안 성리학의 이념으로 이상적 사회를 이루려고 했던 노력들이 학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을 즈음, 그들은 서학(西學)의 문물과 사상을 만난 것이다.
 유학도 본시 인간의 본질을 하늘이 부여한 도덕성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구현하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유학자들이 「칠극」 안에서 수많은 서양의 선비와 현자들의 수덕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놀랍고 반갑게 느꼈을까? 더 나아가 자신들이 마음속에 품어왔던 삶의 근본인 하늘과 하늘의 이치〔天理〕가 인간 세상 안으로 들어와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인격체로서 설명될 때, 혼란스러우면서도 또 한편 얼마나 커다란 희열을 느꼈을까? 내가 그들 안에서 느끼고 만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참된 진리에 대한 욕구, 근원적 존재에 대한 열망 그리고 어려운 결단을 통해 그것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였을 때의 기쁨 같은 것이었다.
 칠극(七克)에서 극(克)의 뜻은 무엇일까? 전주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번역본이 `일곱가지 승리의 길`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을 보면, `이기다` 또는 `극복하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 같다. 그러나 극복해가는 방식은 독특하다. 즉 일곱 가지 죄의 뿌리와 직접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대립되는 덕(德)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이기는 것이다. 이것은 스콜라 철학이 악(惡)을 그 자체로 규정하지 않고, 선(善)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또한 선의 결핍(缺乏) 혹은 완전성의 결여(缺如)로 해석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마르틴 부버가 지은 「인간의 길」이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전해준다. 즉 서로 사돈관계인 두 랍비가 대화를 나누는데, 한 랍비가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속죄하지 못했다"고 한탄하니 다른 랍비가 "그것에서 벗어나시지요"라고 답하는 내용이다. 그것에 이어 또 다른 랍비의 강론을 소개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줄곧 그 잘못에 대한 말만 하고 생각만 하는 자는 자기가 행한 저열한 그것을 마음에서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 자는 결코 돌아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 어쩌자는 말입니까. 똥을 이리 쓸고 저리 쓸어 본들 똥은 똥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는가 안지었는가 해봐야 하늘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꿍꿍거릴 겨를이 있으면 차라리 하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진주알을 꿰고 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에도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악에설랑 아예 돌아서서 더는 거기 마음을 쓰지 말고 선을 행하십시오. 그대는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그렇다면 선을 행함으로써 이에 대처하십시오."
 이것이 「칠극」의 특징이기도 하다. 죄의 7가지 뿌리를 분석하고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적할 수 있는 더욱 완전한 덕을 설정하고 매진하여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마음으로 신앙의 선조들과 함께 찬찬히 이 책을 읽어나가자.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정통 신앙의 보화들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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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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