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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29 - 칠극(七克) 이야기(4)

자신과 하느님 아는 것, 선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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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

「칠극」을 읽다보면 늘 만나게 되는 독특한 느낌들이 있다. 어떤 지혜로운 사람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편안함이다. 어릴 적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의 교리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소신학생 시절 영적 지도신부님의 훈화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게도 되며, 심지어는 한문을 가르쳐주셨던 여러 어르신들의 이야기들도 함께 어우러져 또 다른 세계를 여행하며 그것에 젖어 들어가는 행복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학자인 김승혜 수녀는 「칠극」의 특성으로 `지혜문학적 성격`을 지적하기도 한다. 판토하가 인용하는 많은 성경구절, 고대 문학의 가르침, 교부들의 말씀들은 대부분 지혜문학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동양 종교들의 지혜들도 함께 곁들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여튼 「칠극」은 `교만과 겸손`이라는 주제로 시작하면서 그것에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다. 이 주제가 수덕(修德)의 출발점이자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교만을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고 나서, 경계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제시한다. 즉 세상의 행복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戒以形福傲), 마음의 덕을 자랑하는 것(戒以心德伐),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여기기를 좋아하는 것(戒好異), 명예를 좋아하는 것(戒好名), 선을 가장하여 명예를 낚으려는 것(戒詐善釣名), 예찬을 듣는 것(戒聽譽), 귀해지기를 좋아하는 것(戒好貴)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학 뿐 아니라 동양의 모든 종교들이 그 수덕과정에서 강조하는 것들도 바로 이런 것이다.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것을 잊고 세속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 가치있는 삶인가 하는 문제요, 이러한 경향들은 모두 교만이 빚어내는 결과라는 것이다.
 판토하는 교만을 극복하는 결정적인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을 알아 겸손을 지키는 것`(識己保謙)이다. 그리고 그것에 관한 핵심적인 설명으로 성 베르나르도의 말씀을 전해준다.
 "너희가 만약 두 가지 알아야 할 것을 지니고, 두 가지 알지 못하는 것에서 벗어난다면, 지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알면 겸손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것은 모든 선(善)의 시작이다. 그리고 하느님(天主)을 알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는데, 이것은 모든 선의 마지막이다. 이것이 두 가지 알아야 할 것이다. 자신을 알지 못하므로 교만이 생겨나는데, 이것은 모든 죄(罪)의 시작이다. 그리고 하느님(天主)을 알지 못하므로 하느님에게 바라거나,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것은 모든 악(惡)의 마지막이다. 이것이 두 가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爾持二知. 逃二不知. 則能成智. 知己則生謙爲衆善之始. 知天主故愛天主爲衆善之成. 此二知也. 不知己故生傲爲衆罪之始. 不知天主故無所畏望於天主爲衆惡之成. 此二不知也. 「七克」, `識己保謙`).
 유학이라는 학문도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자신을 살피고, 가꾸고, 완성하는 것이 진정한 학문이다. 그래서 유학을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부른다.(「論語」 헌문편 25절 참조) 그리고 그 학문은 하늘의 뜻을 아는 지명(知命)에서 완성된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論語」라는 책도 `學而時習之`(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면)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不知命無以爲君子`(하늘의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라는 말로 끝나는 지도 모르겠다.
 결국 겸손은 모든 수덕과정을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덕행이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따른다면 `원리와 기초`가 되는 셈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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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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