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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10 - 나의 판단과 하느님의 뜻

박광호(모세,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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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뜻을 이루려는 노력
 결혼을 해야 낫는다는 암시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다리만 절어도 결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중환자가 어떻게 결혼한단 말인가. 내가 처한 형편상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분명히 가르쳐주시지 않았는가. 어떤 사람은 내가 혼미한 가운데 그런 생각을 하고서 암시 운운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이 묵주기도 중에 이뤄졌다. 결코 잡념이 아니었다.
 나는 이 암시들이 하느님의 뜻이라 단정하고 받아들였다. 전능하고 선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불가능이 없다는 확신에서였다. 그리하여 결혼대상자를 찾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 어떤 의도로 보잘것없는 나를 살리려는지 모르지만, 오직 하느님의 뜻을 받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해 가을 한 자매가 반려자로 나섰다. 같은 교리교사였다. 그녀는 내가 투병중임을 알면서도 결혼하겠다고 했다. 서로 가정을 방문하고 인사를 나눴다. 나의 부모는 여자의 활달한 성격을 칭찬하면서 쾌히 허락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가 적극 반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가 나하고 같은 쁘레시디움 단원이어서 내가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하고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두 사람의 교제는 다음해까지 계속됐다. 나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어머니를 설득하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으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우리 결혼은 양가의 축복 나아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한다면, 하느님께서 원하는 결혼이 아니라고 믿었다.
 처녀시집 「금단의 늪」을 발간하다
 반려자로 믿었던 여자는 결국 나를 떠났다. 어머니를 끝내 설득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녀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웃으며 작별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 결혼을 원하지 않으신다고 여기며 슬픔을 달랬다.
 얼마 후 다른 여자가 나타났다. 결혼에 실패한 교우였다. 처녀 때 나하고 같은 교리교사였으므로 서로를 잘 알았다. 그 자매는 내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의 직장을 버리고 목포에 내려왔다. 그리고 누워 있는 나를 대신해 병원에서 약을 타오기도 하고 주사를 놔주는 등 나에게 정성을 다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의 부모는 첫 번째 여자와 달리 두 사람의 결혼을 극력 반대했다. 아들이 있는 여자를 며느리로 맞을 수 없다는 것, 중환자인 내가 결혼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 등이 이유였다. 어쩔 수 없이 그 자매하고의 인연도 접었다.
 실패로 끝난 두 사례는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어느 대상 혹은 일을 두고, 이것이 자기가 찾던 것이거나 옳다고 단정한들 하느님의 뜻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 무렵 병세는 악화일로를 거듭했다. 이런 몸으로 결혼하려고 반려자를 찾는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맹랑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죽든 살든, 결혼하든 완쾌하든 온전히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나의 운명을 맡겼다.
 `흑조시인회` 동인들은 나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시집을 내라고 권했다. 나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시집을 갖고 싶어, 45편의 시들을 모아 서정주 선생님의 추천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1969년 12월에 출간한 「금단의 늪」이 그것이다.
 내 시집을 받은 신석정 선생님 등 고명한 시인들이 격려의 편지를 주고, 김남조 선생님께서는 「김남조시집」을 선사하며 격려해 주었다. 나의 기쁨과 감동은 매우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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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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