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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13 - 서서히 환한 빛이 비춰지다

박광호(모세,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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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바다가 된 혼배미사
 내 결혼식은 처음부터 유별났다. 결혼일 11월 11일 오후 한시는 내가 정했다. 11을 마주 눕히면 사람 인(人)자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결혼일은 사람과 사람이 합쳐져 하나가 된다는 뜻을 담았다. 내 딴에는 최고의 날이었다.
 이날을 위해 나는 `한빛`이라는 시를 썼다. 그리고 국전 입선화가인 정찬경(라파엘) 친구가 청주에서 보내온 무지개 그림과 함께 액자에 넣어 성당 입구에다 게시했다. 이 시는 내가 육신의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하나의 빛이 되겠다는 내용이었다.
 주례 김종남 신부님은 혼배미사 중에 `한빛` 액자를 가져오게 해 낭송해 주었다. 격정적 음성으로 들려주는 낭송은 내 영혼을 울렸다. 30여 년간 투병해 온 고난의 삶이 뇌리를 스치면서 감격이 복받쳐 올랐다. 이것은 소망을 이뤄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눈물이기도 했다.
 성당을 가득 메운 하객들은 대부분 내가 살아온 삶을 아는 분들이었다. 그 때문에 신랑이 흐느끼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더니, 시 낭송이 끝날 무렵에는 성당이 눈물바다가 됐다. 내가 바란 바가 아니었지만 한동안 결혼식 분위기가 초상집 같았다.
 이날 우리는 하느님 축복 속에 혼배성사를 마쳤다. 하느님께서 내 소망을 채워주신 것이다. 이 결혼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줄는지 알 수 없으나, 다만 하느님의 뜻대로 됐다는 데서 감개무량했다.
 신혼여행은 광주 무등산으로 갔다. 산장을 향해 비포장 산길을 가는 차중에서 나는 각시에게 속삭였다. "길이 무척 험하군요. 우리네 인생도 이처럼 험하겠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오! 완쾌의 선물을 주신 하느님!
 그렇듯 바랐던 결혼을 했지만 병세가 호전된 것은 아니었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경제적 어려움이 컸다. 단칸방에 신접살림을 차린 우리에게 수입은 아버지가 매월 주는 최소한의 생활비가 전부였다. 이 돈으로 식량과 부식을 사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치료약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한즉 날이 갈수록 병이 더욱 깊어갔다.
 아내는 궁핍한 가정 형편에 당황해했다. 남편의 질병에다 가난이 겹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남편이 고통으로 괴로워하는데도 약을 쓰지 못하는 현실에 어쩔 바를 몰라했다. 부엌에서 한숨소리가 들리고 가끔 소리 죽여 울다가 나에게 들키곤 했다. 아내에게 그 같은 슬픔을 주는 내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이듬해 봄 아내는 결혼예단이며 폐물을 헐값으로 모두 처분했다. 남편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약이 떨어지고 병세는 다시 악화됐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도였다. 결혼 전에 혼자 바치던 묵주기도, 성모님께 약속했던 그 묵주기도를 부부가 함께 간절하게 바쳤다. 다른 기도도 정성껏 바쳤다. 하느님께 매달리는 이 기도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 가운데 1973년 6월 10일 약속한 묵주기도를 다 바쳤다. 이날은 성령강림대축일이었다. 가슴이 벅찬 가운데 참례한 주일미사 때는 뜻밖에 아내와 함께 성찬예물봉헌을 했다. 영세 이후 한 번도 주어지지 않던 이 예물봉헌에 참여하면서 나는 일년 묵주기도를 함께 봉헌했다.
 놀랄 일은 그 다음날부터 일어났다. 아홉 군데 환부가 하나씩 메워지더니, 6월 30일에는 마지막 남은 환부에서 뼛조각이 나왔다. 그리고 7월 1일부터는 환부가 깨끗이 아물고 고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침내 하느님께서 완쾌의 선물을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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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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