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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22>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9)(하)

교회 권위 회복하고 쇄신과 개혁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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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가 열린 로마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
옛 성전은 화재로 없어지고 지금 모습은 후대에 재건된 것이다.
 

▨공의회 개최와 결과

 1123년 3월 18일 로마의 성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교황 갈리스토 2세(재위 1119~1124)가 소집한 공의회가 열립니다.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였습니다. 요한 세례자와 요한 사도, 두 요한 성인에게 바쳐졌다고 해서 오늘날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이라고도 부르는 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에 있는 대성전 곧 바실리카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진 성전입니다. 교회 전례력에서 유일하게 축일(11월 9일)로 기념하고 있지요.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당시 교황들의 대관식과 착좌식이 거행되곤 했던 라테라노 대성전이 이제 서방 교회 전 지역에서 온 주교와 대수도원장들로 북적였습니다. 참가자들은 대주교와 주교를 합쳐서 300명이 넘었고, 대수도원장도 6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남아 있는 공식 의사록이 없어서 회의 진행 방식이나 논의 과정, 투표 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공의회는 사순 제3주일인 3월 18일에 시작됐고, 마지막 회의가 4월 6일에 열렸다고 하니 회의 기간은 보름 남짓으로 짧았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약 6개월 전에 교황이 황제와 합의한 보름스 협약을 공의회를 통해 공식 비준해 공포하고, 교회생활 개혁과 쇄신에 관한 사항들을 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보름스 협약 내용은 그대로 승인됐고, 교회생활과 관련한 22개(혹은 25개) 조항의 법규가 발표됐습니다. 이 법규들은 대부분이 이전 공의회 또는 교회회의들에서 제정했던 것들을 재확인하고 강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공의회 기간 중인 3월 28일 콘스탄츠의 콘라드(? ~976) 주교가 시성되고, 함부르크-브레멘 대교구장 아달베로 대주교가 권위와 책임과 친교의 상징인 팔리움을 받았습니다. 또 캔터베리 대주교와 요크 대주교는 잉글랜드 교회에서 누가 더 서열이 높은지에 관해 서로 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가 단지 현안만 논의한 자리가 아니라 전체 교회의 현안과 직접 상관이 없는 토론까지 벌인 비교적 자유로운 자리였음을 알려줍니다.
 

▨주요 결정사항  

 보름스 협약을 재확인한 것 외에 공의회에서 결정한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성직 매매를 금하며 △주교로 축성되기 전에 교회법에 따라 합법적인 주교 선출이 이뤄져야 하고 △부제 사제 주교로 단계적 서품이 이뤄져야 하며 △차부제(부제품 바로 직전의 품계, 현재는 없어짐) 이상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결혼하거나 동거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성직자는 새로운 사목 직무를 맡기 전에 반드시 주교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대립 교황 그레고리오 8세(1118~1121)가 단죄받은 후에 서품한 성직자들의 서품은 무효이며 △교회 재산에 대한 전권은 주교가 갖고 있으며 평신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교회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수 없으며 △교회에 바치는 봉헌물을 착복하는 평신도들이나 교회를 성채처럼 요새화하는 이들에게는 파문 제재를 가하고 △수도원장을 포함해서 수도자들은 일반 신자들에게 병자성사를 집전하거나 일반인들을 위한 장엄미사를 드려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요.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의 결정 사항들 가운데는 이처럼 성직자 수도자 생활 및 교회 재산과 관련한 규정들 외에 특별히 두 가지를 더 주목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군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슬람 세력에 짓밟힌 성지 팔레스티나를 회복하고 역시 이슬람 세력에 시달리는 동로마 제국을 돕기 위한 십자군 원정을 공식으로 선언한 교황은 우르바노 2세(재위 1088~1099)였습니다. 그는 1095년 클레르몽 교회회의에서 십자군 원정을 선언하면서 성지 회복이라는 좋은 뜻으로 참가하는 이들에게 대사를 부여했지요.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이를 재확인하면서 십자군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대사를 허용하고 그 가족과 재산을 보호하도록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의 휴전`(Treuga Dei)에 관한 규정입니다. `하느님의 평화`라고도 하는 이 규정은 특정 시기에는 전쟁을 금지하고 휴전한다는 규정입니다. 이를 위반하는 이에게는 성사 금지와 같은 중벌이 내려졌습니다. 11세기 초반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행되면서 그리스도교 지역 전체로 확대된 신의 휴전에 관한 규정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수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또 대림시기 시작부터 주님 공현 축일까지 그리고 성령강림 대축일부터 8일 동안 전쟁을 금하도록 했습니다. 교황 우르바노 2세는 1095년 클레르몽 교회회의에서 십자군 원정을 선언하면서 신의 휴전도 함께 선언했지요.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이 규정을 재확인하면서 어기는 이들에 대한 처벌도 명문화했습니다. 당시 유럽 사회 전체가 그리스도교 세계였기에 가능한 규정이었습니다.
 공의회는 이 밖에도 로마 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 순례자들을 약탈하는 이들에게는 파문 제재의 벌을 가하며, 위조 화폐를 만드는 이나 유통 시키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이들로 여겨 격리해야 한다는 규정도 마련했습니다.
 
 
▨의의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외형적으로는 두 번째 천년기 들어 열린 첫 번째 세계 공의회라는 점, 이전 공의회들과는 달리 황제가 소집하고 관여한 공의회가 아니라 교황이 직접 소집하고 주재한 공의회라는 점, 그리고 동방이 아니라 서방 교회에서 서방 주교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린 최초의 세계 공의회라는 점에서 앞서 열린 첫 천년기의 8차례 세계 공의회와 차이가 있습니다.
 내용상으로 볼 때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황제나 제후 같은 세속 권력에 맞서 교회 권위를 회복하고 교회 개혁과 쇄신을 이룩한 공의회로 기록됩니다. 공의회는 보름스 협약을 재확인하고 비준함으로써 성직자 서임에 관한 교회 고유의 권한을 회복했습니다. 또 성직자 생활과 규율 등에 관한 다양한 규정들은, 이전 공의회나 교회회의 결정들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10세기 클뤼니 수도원에서 시작돼 교황 그레고리오 7세 때에 꽃을 피운 교회 개혁의 틀을 확고히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공의회에서 채택한 `신의 휴전`에 관한 조항은 국가간 또는 제후(영주)간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에서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교회의 공식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이 역시 클레르몽 교회회의의 결정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훗날 세계 공의회로 기록되는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신의 휴전` 규정을 공식으로 선포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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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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