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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47) 친절하다는 것은

커피는 정성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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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전화가 왔습니다. 지방에 사시는 평소 잘 아는 부부가 있는데 그날 자매님이 친구들과 서울 고궁나들이를 왔다며, 지금 수도원 근처인데 혹시 시간 있으면 잠깐 수도원에 들러도 되겠냐고 했습니다. 글 쓸 일이 있어 며칠 동안 책상에만 앉아 힘겹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나른한 토요일 오후, 졸음으로 눈꺼풀은 처지고 어깨도 뻐근하고 무릎도 시려 잠깐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전화가 왔기에 기꺼이 수도원으로 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잠시 후 자매님은 다른 두 자매님과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한 분은 지난달에 세례를 받은 직장 동료였고, 다른 분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학부형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종교는 다른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두 분을 처음 만나는 저입니다. 사실 평소에 낯가림도 심한 편이고, 처음 만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를 잘 모르며, 특히 상담이 아닐 경우 종교마저 다를 때는 대화의 주제마저 없어 내심 고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손님이 도착했다는 안내실 전화를 받고 응접실로 가려고 수도원 복도 모퉁이를 도는데 후배 형제랑 부딪칠 뻔 했습니다. 저는 그 형제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으며 ‘나는 지금 처음 뵙는 손님이 와서 응접실 가는데 어떻게 잘 해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했더니 그 형제가 갑자기 ‘커피를 타 드릴까요’하고 제안했습니다. 순간 ‘나야 너무 좋지’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응접실에는 밝은 표정의 세 분 자매님이 계셨고 저는 어색함과 부끄러움으로 손님을 어떻게 접대할지 몰랐는데, 맛난 커피를 타주겠다는 후배 형제는 응접실에서 어색함에 안절부절못하는 저를 아랑곳하지 않고 원두커피를 정성껏 갈고 다시 어느 봉투 같은 것에 담더니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붓는데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짜잔’ 맛있는 커피가 나왔는데, 그 안에는 커피 이상으로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에 그토록 정성을 다 쏟은 형제는 이내 자기 방으로 사라졌습니다.

손님들은 그 형제의 정성에 탄복하며 커피를 마셨습니다. 응접실에 하나 가득 정성스런 커피 향이 배였습니다. 자연스레 종교가 다른 자매님이 처음에는 수도원이라는 곳에 들어오기가 너무 어색해서 자신은 대문 밖에서 그냥 기다리겠다고 말했는데, 이 커피 안 마셨으면 자칫 후회할 뻔 했다며 우리 모두 한 시간 넘게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처럼 행복한 시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시는 그분들의 뒷모습은 행복을 가득 안고 가시는 듯했습니다. 후배 형제의 정성이 커피가 아닌, 감동을 가득 가득 마신 듯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친절은 어떤 보여 지는 멋진 행동이 아니라 정성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것, 바로 그것이 친절이었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는 이미지 관리 차원의 친절이 아닌 정성, 그 자체는 인간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좋은 이음새였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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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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