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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52) 하느님 뜻과의 조화 (16)

하느님 기준에 맞게 살자/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그분의 원형태 닮도록 노력/ 마음속에 심어진 인격 회복해 행복의 삶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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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두툼한 두루마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풀면 술술 풀려나오는 그런 두루마리 말이다. 그 두루마리는 바로 나의 역사 두루마리다. 나의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나다. 다른 사람이 보려고 해도 내가 그 역사 두루마리를 펴 보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이 두루마리에는 그동안 내가 어떻게 이웃을 대하고, 또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세세히 적혀 있다. 또 그 두루마리에는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다. 보기 흉한 상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칼을 휘두른 살벌함도 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우선 이 두루마리를 잘 파악해야 한다.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이 두루마리에는 긍정적인 면, 행복한 면도 있겠지만, 부족한 점, 부정적인 것도 적지 않다. 사실 완벽하게 깨끗한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두루마리가 완벽한 분은 예수님뿐이다. 따라서 두루마리가 부끄럽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인간적 판단과 척도로 나의 역사 두루마리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 역사 두루마리를 보는 돋보기는 ‘신비’여야 한다. 하느님은 태초부터 나를 섭리하셨다. 이것이 선형성이다. 그 선형성이 요구하는 바를 구현하는 것, 즉 공명의 삶(하느님 뜻과 조화되는 삶)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비가 나의 역사의 척도가 되어야 하고 기준이 돼야 한다. 거꾸로 말하자면 나의 역사는 하느님으로부터 판단 받아야 한다. 역사 두루마리에 대한 평가를 내가 하지 말고 하느님의 척도와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세상의 정치와 경제, 문화 현상도 모두 하느님 앞에서 판단 받아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인간 삶 전체가 하느님의 기준, 하느님의 척도에 맞게 형성되어야 한다. 내 기준, 우리 회사,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보통 나 자신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린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자위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남을 비방하고 깎아내리는 행위가 얼핏 보면 자신을 살리는 일 같지만 정작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그것은 자신을 죄와 자책감의 구렁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하느님이 기준이 돼야 한다. 여기서 하느님은 내가 만들어낸 가짜 하느님, 나만 돕고 다른 사람은 벌주는 세속적으로 인간화된 하느님, 나를 정당화하기 위한 우상의 하느님이 아니라, 형성하는 신적 신비로서의 하느님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척도, 하느님의 기준이 사라질 때, 우리 사회는 절망의 구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인격이 회복돼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심어주신 아름답고 영롱한 그 인격이 회복돼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다. 이념도, 정의도, 평화도, 인권도 이 하나에서 출발한다. 이기적인 사람이 인권을 말한다면 그 인권은 이기적인 것이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창조 때부터 심어주신 인격의 회복 없이는 이념과 정의도 무의미하다.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인간 형태는 형성하는 신적 신비의 ‘원형태’가 아니다. 모상일 뿐이다. 완벽하지 않다. 형성하는 신적 신비의 원형태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성령과 완벽하게 일치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돼 있지 않다. 우리는 원형태가 아니라 그분의 모상이다. 모조품이다. 다만 원형태를 닮아 갈 수는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내가 기준이 되거나, 내가 말하는 진리가 완전한 진리라고 하는 것은 오만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원형태와 합치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모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 원형태를 닮아 갈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러한 노력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귀한 존재인가 아닌가가 갈라진다.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 없다. 모두가 하느님의 일이고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

요즘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본다. 세상의 기준은 다른 곳에 있는 듯 보인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에 기준을 둔다. 아무리 잘난 척 해도 인간의 일은 조금 시 간이 지나면 바닥이 드러난다. 자신이 하느님인양 처신하면 안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하느님의 척도, 하느님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첫 단추다. 이 첫 단추가 나를 진정한 행복의 삶으로 이끌 수 있다.

혹시 지금 마음이 아픈가. 사는 것이 힘든가. 이웃을 탓하고 있는가. 이웃에게 본의 아니게 고통을 준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가.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겠는가. 세상이 온통 싸움판으로 보이는가.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겠는가. 세상이 허무하게 느껴지는가.

해답이 있다. 첫 단추를 다시 채울 것을 권고한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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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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