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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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58) 하느님 뜻과의 조화 (22)

주님 뜻 깨닫고 행복한 삶 살기 위한 ‘항구함’/ 하느님 뜻 아닌 내 뜻대로만 하면 잡음과 고통 생겨/ 영성 생활은 매 순간 주님을 찾고 그 빛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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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신앙인이 영성 생활과 관련해 질문하곤 한다. 각양각색이지만 그 질문들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이 하나로 모인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답은 간단하다. ‘항구함’이 중요하다.

신앙인 중 많은 이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강한 은총을 체험한다. 심지어 쉬는 신자들에게 물어봐도 은총을 체험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항구함’이다.

일시적으로 하느님 은총 안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 자체도 대단한 것이다. 그 자체의 의미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항구함’이다.

영성 수련은 눈만 뜨면 하느님을 찾는 것이다.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다가도 하느님께 들렀다가 가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잠깐이라도 하느님께 들렀다가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기도의 정점이 어떤 기도냐고 묻는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화살기도라고 말한다. 매일 암송하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주일마다 미사에 참례하는 것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미사 참례와 매일 기도의 정점은 화살기도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화살기도는 그저 입으로 중얼거리는 그런 화살기도가 아니다. 완전히 하느님과 일치되어 살아가는, 바로 옆에서 하느님이 계시듯이 살아가는 그런 의미의 화살기도다. 영성 생활은 매 순간 깨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그리고 그 찬미를 몸과 정신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성 생활은 그렇게 하느님 안에서 빛으로 살며 세상에 환한 빛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항구하게 ‘중심’을 의식해야 한다. 중심은 하느님이고, 그 하느님의 뜻과 조화되는 삶인 공명이다. 우리는 중심을 의식하는 일에 끊임이 없어야 한다. 잠깐 들렀다가 가는 것이 아니고, 항구하게 그러해야 한다.

이러한 항구함을 위해서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하느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의 하나가 귀 기울임이다. 사실 모든 것은 하느님이 이미 들려주시고, 보여주셨다. 지금도 보여주고 계시다. 그냥 보이도록 하고 들리도록 한 것이 아니다. 뜻이 있으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기 위해 눈을 열어놓아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 귀를 열어 놓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적 노력이란, 인간의 뜻으로 행하는 그런 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열어 보여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말한다. 왜 보여주셨을까, 왜 듣게 하셨을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 영적 수련이 깊은 사람은 이렇게 듣고 보는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을 더 빨리, 정확히 깨달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먼저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행동에 옮기려는 경향이 있다. 성격이 급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들으려고 하고,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다. 그래서 기도를 하지 않는 삶은 위험하다.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활동은 영적 성숙의 바탕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진정한 영적 성장 안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겸손을 동반한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움직이는 활동에는 잡음이 없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하다 보니 잡음이 생기고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본당 주임 신부님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많은 본당 봉사자들이 쉽게 삐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보속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봉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이 자신의 희생을 알아주려고 하는 그 순간에 도망가 버린다. 봉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봉사에 대한 보답을 바란다.

이처럼 진정한 보속과 하느님 뜻에 따르는 삶을 위해서는 항구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요함 속에서 하느님을 따라야 하는데, 세상에는 수많은 소음과 공해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소란하고, 우리는 그 소란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 소란을 걷어내자. 가장 귀한 가치를 들을 줄 아는 귀를 키우자.

항구함의 화살기도를 하자. 그러면 내가 하느님이 창조 때부터 섭리하신 예쁜 꽃, 밝은 빛임을 알 수 있다. 지금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장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암울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 그래도 우리는 하느님의 꽃이다.

조금 어려운 말 하나 하자. 공명에 대한 항구함은 전 신비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줄 수 있게 한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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