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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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60) 하느님 뜻과의 조화 (24)

공명의 삶은 ‘부드러움’ · ‘확고함’으로 드러난다/ 공명으로 향하는 모든 길은 주님 뜻으로 마련돼/ 부드러움과 확고함은 평생 닦아야 할 우리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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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뜻과 조화를 이루는 길, 즉 공명의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오솔길도 있고, 험난한 산길도 있고, 발이 푹푹 빠지는 백사장 길도 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편안히 질주할 수 있는 고속도로길도 있고, 사륜구동의 억센 힘이 필요한 비포장도로도 있다. 그런데 이 길 중에 쓸모없는 길은 하나도 없다. 모두 공명으로 향하는 소중한 길이다. 하느님이 이 길들을 마련하신 것은 각자에게 맞게, 또는 각성하며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하나 모두 이유가 있다.

그만큼 이 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이렇게 우리가 하루하루 살며 걸어가는 그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 길에서 인간은 돈벌이에만 매진하고 있다. 이 길은 권력다툼하고 다른 사람을 모함하라고 마련한 길이 아니다. 그 모든 길은 우리가 완성된 삶을 살아가라고, 공명의 삶을 살아가라고 있는 길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 길을 걸어가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드러움’과 ‘확고함’의 성향이 중요하다. 공명의 길을 운행하는 차에는 네 가지 바퀴가 있다. 앞에서 수없이 언급한 바 있는 하느님과의 합치, 이웃에 대한 연민, 세상 살아가며 주어지는 상황과의 융화,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세상에 펼치는 역량이 그것이다.

이 자동차 네 바퀴를 움직이는 핸들이 바로 ‘부드러움’과 ‘확고함’이다. 물론 뒷부분에 가서 ‘주의’, ‘머묾’ 등 영성 자동차 운행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겠지만 일단 우리는 핸들 조정법, 즉 부드러움과 확고함에 대해 숙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명의 삶을 산다는 것, 즉 하느님의 뜻과 조화되는 삶, 세상 만물과 조화된 삶을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적으로 표현하면 완덕의 삶, 성덕의 삶이다. 이 완덕의 삶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확고함과 부드러움이다.

완덕을 향해 확고하게 나아가겠다는 확고함, 세속의 그 무엇이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부터 이끌어 주시는 그 길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확고함이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진리에 대해 확고하지 않으면 삶이 우리 앞에 쌓아놓고 있는 시련을 견뎌내지 못하게 된다.

더 나아가 확고함이 없으면 삶을 대하는데 있어서 침착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왕좌왕하게 된다.

호랑이 굴에 가도 침착하면 산다. 차분해야 한다.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의심하고 흔들리는 것이다. 확고함은 하느님 안에 토대를 두었을 때 가능하다. 자기 자신 안에 토대를 두는 것은 완고함이다. 완고함은 나 자신의 고집을 위한 독선이지만, 확고함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그러한 확고함이다.

이러한 확고함은 부드러움과 함께 가야 한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목적지를 향해 나아겠다는 확고함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부드럽게 운전해야 한다. 영성 생활에서 마찬가지로 확고함과 부드러움은 동시에 필요한 조건이다. 등산할 때도 정상에 오르겠다는 확고함과 함께 부드러운 산행이 필요하다. 그래야 확고한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부드러움은 기쁜 일이 있든 슬픈 일이 있든, 어디서나 평정을 이루도록 만든다. 부드러운 사람은 핑계 대지 않고, 안절부절못하지 않는다. 조용히 세상을 관조하고 은총이 왔을 때 착착 받아들일 뿐이다. 평정하고 차분한 마음 가운데 기쁨도 나누고 슬픔도 나눈다. 부드러움은 우리의 삶 안에서 누구를 만나든, 기쁜 사람을 만나든, 슬픈 사람을 만나든 차분하게 해 준다. 이러한 부드러움은 확고함과 함께 가야 한다. 확고함 없는 부드러움은 연약하고, 부드러움 없는 확고함은 가혹해진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부드러움과 확고함이 왜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자동차의 핸들은 바퀴를 조종하기 위한 것이다.

부드러움과 확고함의 핸들은 순명적인 합치, 순명적인 연민, 순명적인 융화, 순명적인 역량이라는 네 바퀴를 잘 굴리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부드러움과 확고함이라는 핸들을 움직여 운행할 길은 먼 길이다.

이 두 가지 성향을 삶 안에서 성취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닦아나가야 할 성향이다. 그래야 우리가 공명의 삶을 완성시켜 나갈 수 있다.

성모님을 보라. 성모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확고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부드러웠다. 죄 없는 구세주 아들의 죽음 앞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성모님은 보통 어머니의 모성을 뛰어넘고 있다. 이것이 공명이다. 그 부드러움과 확고함을 통해 완벽한 하느님과의 합치, 연민, 융화, 역량을 이뤄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면,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신다면 이 경지까지 가야한다. 그래야 신앙이다. 대충 성당에 몇 번 나온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일이 아니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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