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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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61) 하느님 뜻과의 조화 (25)

인생의 모든 목적은 ‘주님께 영광’ 위한 것 돼야/ 신앙인이라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선 안돼/ 주님에 대한 순명, 순명을 위한 ‘개방성’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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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제1의 목표는 무엇일까.

신앙 안에서 약간의 체험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을 말할 것이다. 신앙인인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잘 먹고 잘살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삶에서는 진정한 행복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고,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행복하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 5,11~12)고 하셨다.

이러한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 뜻과 조화된 삶, 세상 만물과 이웃과 조화된 삶, 즉 공명의 삶이다.

신앙인이라면 세상을 보는 가치가 이렇게 달라야 한다.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삶의 가치와는 달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결혼하는 제1의 목적이 두 남녀가 만나서 ‘우리끼리 잘살자’가 되어선 곤란하다. 결혼의 제1 목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함이 돼야 한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땀 흘리는 제1 목적은 가문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다. 돈 많이 벌고, 출세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이렇게 우리 인생의 전체 목적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함’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순명이 중요하다. 하느님과의 순명적인 합치, 이웃에 대한 순명적인 연민,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명적인 융화, 순명적인 자세로 행하는 참된 역량의 발휘가 중요하다. 모든 것을 내 능력으로 이루려고 하면, 종교 단체마저도 사조직으로 변질할 우려가 있다.

신앙은 순명이다. 이 순명이 없을 때, 타락이 오고 탈선이 온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나약하기에 철새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한동안 확고함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 했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순간에 철새가 돼 날아갈 수 있다.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인류에게 순명의 덕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렇게 순명을 성취해 내기 위해서는, 철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방성’이 필요하다. 닫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살다보면 수많은 사건과 마주한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내 생각에만 갇혀서 살아가면 더 큰 것을 볼 수 없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건네신다. 하느님은 인간의 내면에 직접 나타나 영감을 통해 깨달음도 주시기도 하지만, 역사와 다양한 만남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실 수도 있고, 성인성녀전을 통해 말씀하실 수도 있다. 또 다양한 교회 내 출판물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다. 언제 어떻게 말씀하실지 모른다. 그래서 열려서 깨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상황에 열려 있어야 한다. 개방돼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목표는 참된 공명의 삶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노력 없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삶을 공명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세상에는 공명을 방해하는 불공명적 요소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의식 층에도 이런 요소가 가득하다. 조화된 삶을 방해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내면과 이웃, 세계 역사의 무의식층 안에 널려 있다.

그럼에도 이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하느님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개방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하루하루를 묵묵히 소걸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받아들이는 묵묵한 걸음보다는, 잘난 척하고 스스로를 높이 세우려 한다. 개방돼 있지 않다. 어제의 생각에 고정된 사람은 흘러가는 신비를 깨닫지 못한다.

신앙인이라면 어제와 오늘이 달라야 한다. 어제와 똑같은 삶을 오늘도 살아선 안 된다. 어제는 끝났다. 점수가 이미 매겨졌다. 평가도 끝났다. 어제를 철저히 점검해서 흘려보내고 오늘을 열린 자세로 살아야 한다. 나와 이웃, 상황, 세계, 하느님을 향해 열려 있는 개방된 자세로 오늘을 살아서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나의 무의식층, 나의 가정, 세계 역사 안에서 불공명적인 면을 새롭게 점검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 뜻과 조화된 삶, 이웃과 세상 만물과 조화된 삶, 즉 공명의 길이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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