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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34) 기본기에 충실한 삶

언제나 기도·침묵의 삶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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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녀원 새벽미사를 드리러 가다가 서울역을 지나는데, 신문에서 겨울 한파로 동사한 노숙자의 죽음 소식을 읽어서인지 노숙자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청을 지날 때는 시국 현안과 시위현장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석진아, 너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니?’

수녀원에 도착해 성당에 들어가는데 따뜻한 방과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세상의 일과 무관한 듯 평화롭게 아침기도를 드리는 수녀님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문득, ‘이 수녀님들의 아침기도보다 뜨거운 물을 들고 길거리로 나가 노숙하는 분들에게 차를 드리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지금 세상에서는 ‘분배와 정의’ 문제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 평등이 짓밟힌 세상 앞에서 구체적 힘을 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미사가 시작됐고 영성체 후 묵상을 하는데 순간 마음속에 울림이 울려왔습니다. ‘효율성의 유혹에 속지마라. 기본에 충실하라. 더 큰 힘이 생길 것이다.’

효율성의 유혹. 이 단어는 우리 마음에 은밀히 다가와 모든 가치관을 흔드는, 식별해야 할 사고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때로는 ‘사랑은 실천’이라는 명제 아래, 기도는 제쳐두고 실천하는 행동만이 더 효율적이며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말은 ‘투신’이라는 모습으로 변장해 외적으로 효과적인 행동만이 ‘살아있는 신앙’이라고 말하기에 때로는 일상에서 주어진 기도와 침묵하는 기본적인 삶을 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세상을 향한 사랑의 실천과 봉사,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는 것, 정의와 평화를 위한 외침의 소리, 한파에 얼어 죽어가는 노숙자들에 대한 구체적 배려 등은 우리에게 부여된 중요한 몫입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지 않는, 행동만 강요하는 실천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자체로 힘을 잃고 쉽게 지치게 되고 마침내 열정마저 부식돼 인간 본연의 약점인 게으름으로 타성에 젖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근본을 알고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면 결코 그것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기도와 침묵’의 삶은 언제나 중심이 돼야합니다. 그 힘을 갖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기도가 중심이 된 삶’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문득 인간을 위해 부지런하신 주님이 다음날 새벽이면 언제나 외딴곳으로 가시어 기도하면서 하느님과 하나 되는 시간을 가진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재충전의 시간,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든 가질 수 있습니다. 단지 효율성의 유혹에 빠져, 지쳐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핑계에 속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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