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40) 하느님 뜻과의 조화 (4)

오직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 내 욕심·고집 버리고 세상사에 덜 신경 쓰며/ 하느님과의 조화로운 관계에 90% 투자해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순명(順命)에 대해 묵상해 보자. 순명을 한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천명(天命)에 순종함’이다. 순명은 단순히 윗사람의 말에 복종하며 따르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순명이라는 말은 오직 형성하는 신적 신비, 그분에게만 쓸 수 있다.

실제로 순명(Obedience)은 가톨릭적 의미에서 ‘스스로의 자유의사를 끊어 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오직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말한다. 지금까지 이 글을 통해 수없이 언급해온 ‘공명’(Consonance, 共鳴, 하느님 뜻과의 조화)은 사실, 신비가 우리 존재의 가장 내밀한 자리들에서(신비의 현존의 장에서) 스스로를 계시할 때 그 신비에 대해서 보이는 순명이다. 즉 순명(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공명이다.

이렇게 하느님 뜻에 조화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진정한 순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사 안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들에 많은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는 인간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세상살이에 대한 관심이 과도하다는 말이다. 세상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다 보면 형성하는 신적 신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하느님과의 모든 관계도 약해진다.

인생의 80 내지 90를 형성하는 신적 신비와의 관계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살이가 힘들고 무의미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인간관계에 삶의 에너지를 90 투입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과의 조화로운 관계에 80~90 투자하다 보면, 인간관계는 저절로 해결된다. 사실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선 100를 하느님께 투자해야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80~90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인간관계에 80~90를 투자한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을 외면하게 된다. 이 사람에게 5, 저 사람에게 10, 또 다른 사람에게 10 이렇게 다 쓰다보면 그 인간관계 안에서 허덕이게 되고, 결국에는 하느님의 뜻을 까맣게 잊고 살게 된다. 자연히 세상살이가 힘들 수밖에 없다. 행복하길 원하면서 정작 행복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방황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오해를 한다. “인간관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산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부모님과의 관계,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도 도외시하고 오직 하느님과의 관계만 생각하라는 말인가.”

하느님 관계에 모든 것을 걸라는 말은 인관관계를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많은 세상사가 있지만 하느님의 뜻을 의식하면서 하느님 관계에 80~90 매달리다 보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사실 우리는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하느님의 힘이 80, 90다. 하느님은 신비스런 능력을 발휘하시는 분이니까, 당신이 직접 해 주시기를 바라는 또 하느님께서 나를 도구로 써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하느님과 80, 90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내가 이웃에게 해 주는 것은 미약하다.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해 주신다. 그런데도 1~2년만 지나면 잊어버릴 그런 세속적인 것들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문제는 인간관계뿐 아니다. 그 인간관계에 돈과 권력, 명예 등이 얽혀 따라온다. 이런 것들에 우리는 온통 정신을 기울인다. 밤을 새워가며 고민하고 허덕인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참으로 불행한 삶이다.

언제 순명할 생각인가. 하느님의 뜻은 언제 찾을 것인가. 하느님께서 인간이 불행하게 살라고 창조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하느님을 멀리하고 살면서 스스로 불행하게 산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순명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고 산다. 우리는 하느님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잘난 것이 뭐 있는가. 똑똑한 척 할 필요 없다.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그분의 뜻에 순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을 알아야 진정한 평온이 찾아온다.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 하느님 당신이 나를 통해 능력을 펴시도록 우리는 고개만 숙이면 된다. 이것이 기도다. 나는 하느님의 도구일 뿐이다.

내 것이 없다. 자녀도 내 것이 아니다. 내가 키운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돌봐 주시는 힘이 훨씬 크다. 그냥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선물이다.

그분의 뜻에 깊게 침잠해 들어가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포함해 나의 모든 이웃들이 그분의 뜻대로 존재하도록, 그분의 뜻대로 피어나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하느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도록 협력하는 것, 모든 사건, 세상사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것, 이것이 순명이다. 이 순명 안에 내 욕심과 내 고집은 없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4-0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4

필리 2장 3절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