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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37) 바닥을 치다

신자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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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판공성사를 주러 동창신부님이 주임으로 있는 본당에 간 적이 있습니다. 다들 일선 사목현장에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얼굴 볼 기회가 없기에 이렇게 판공성사에서라도 몇몇 동창신부님들의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그날도 다섯 명의 동창신부님들이 함께 저녁 판공 때문에 모였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머리들은 희끗희끗, 얼굴에는 주름이 보이는 것을 보며 다들 나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갓 서품 받을 때 열정만 가지고 사제가 된 동창 신부님들, 그 열정 때문에 늙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나이는 들어가지만 그 열정이 원숙함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두 시간 넘게 판공성사를 주고나면 기다리는 시간이 있답니다. 신자들의 죄를 충실히 들었던 그 귀, 신자들의 고백을 사해준 목을 씻는 시간이라고나 할까요. 죄는 하느님이 다 들으시어 씻어주셨고, 우리는 그 직무를 다한 충실한 종들의 뒤풀이 마음으로 가볍게 술 한 잔과 다과를 나누는 시간 말입니다.

그 시간 또한 각자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신학생 시절 이야기를 나누면서, 듣고 또 들어도 지겹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면서, 중후한 나이보다는 열정밖에 없던 신학생시절과 갓 사제가 된 시절의 이야기로 서로를 즐겁게 해줍니다.

그 와중에 애절한 고백도 있었습니다. 사실 그 신부님은 사제적 삶에 대한 갈증과 깊은 번민에 힘겨워하다가 일 년 이상 사제직을 그만 두고, 일반인으로 돌아가 작은 샌드위치 가게를 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야기를 솔직히 꺼내주었습니다.

“샌드위치 장사를 하면서 너무도 많은 경험과 다시는 맛보지 못할 좋은 체험을 했어. 그것으로 인해 지금까지 내 삶이 많이 변화되었고 앞으로도 사제인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계속 변화될 거야. 그런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생각은 ‘주변에 많은 분들이 이렇게 고생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신자 분들은 샌드위치를 팔아도 얼마 남지 않을 그 돈으로 헌금을 내고 교무금을 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신자들이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사제들, 정말 신자들의 정성과 사랑으로 하루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잖아. 더 좋은 사제 되라고 헌금하고 교무금 내고. 우리 성당 더 잘 꾸려 나가달라고 정성을, 마음을 쏟고 그러잖아. 우리는 잘 살아야해. 아무튼 나는 내 인생, 바닥을 치고 나니 세상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더라.”

그날따라 신자들이 수고하는 우리 사제들을 위해 정성껏 깎아 놓은 과일이랑 사랑의 마음으로 준비한 안주와 술이 우리가 앞으로 계속 섬겨야할 신자들이 내려준 하사주 같았습니다. ‘바닥을 친다’! 다른 동창신부님과 함께 각자의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 앞으로 더 겸손해지지 않으면 바닥을 치는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난히 밤하늘의 별마저 따뜻한 밤이었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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