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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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90) 슬퍼야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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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슬퍼야 행복한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 병을 고치기 위해 성경묵상을 하고 있는데, 복음 내용 중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5장 산상 설교에서 행복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중 슬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온종일 우울하고 슬픈데, 그게 행복하다는 뜻인지요.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다 저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인지요?

 
 A. 성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자면 슬퍼할 줄 아는 사람 즉, 마음에 연민을 갖고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연민은 그리스도교인 덕목 중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면,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속사업이 바로 연민으로 시작이 됐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실 때, 굶주린 사람들에게 빵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 심지어 당신을 해코지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당신이 마음 가득 가지신 감정은 바로 연민입니다. 연민이 공동체가 완성되는 길이고 개인이 구원받는 길이란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연민을 키우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베드로 사도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병자들이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만이라도 만지길 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베드로 사도의 무엇이 그처럼 큰 치유능력을 일으키는 걸까요? 베드로 사도가 가진 연민의 힘이 그런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사셨기에 그토록 큰 연민을 가진 것일까요? 참된 자기인식을 통해 깊고 큰 연민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영성심리학자 윌키오는 참된 자기인식에 대해 "참된 자기인식이란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빛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둠이란 것, 어떤 면은 성인이지만 어떤 면은 악인이란 것을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양면성을 보는 것이 참된 자기인식이고, 이러한 참된 자기인식을 가질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해 동병상련의 감정과 연민의 정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어두운 면, 자신이 스승을 버리고 배신한 것과 자신의 나약함에 대해 온몸으로 체험하신 분이십니다. 즉 사람이 얼마나 많이 나빠질 수 있는지 뼈저린 경험을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질 수 있었고 그 깊은 연민이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더 열심인 신앙인이 되기 위해 매일같이 자기성찰을 하고 보속하는 삶을 살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지고 하느님을 뵙기가 무섭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자꾸 까칠해져간다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자기성찰에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자기성찰이란 영성수련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기성찰을 마치 재판관이 죄수 다루듯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언제 무슨 죄를 지었고, 몇 번이나 지었고 하면서 자기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성찰이 아닌 자기재판을 하게 되면 마음 안에 연민은 말라버리고, 병적 죄책감만 생기는 정신적 부작용을 낳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많이 하는데 하느님은 더 멀어지고, 봉사는 많이 하는데 성격은 까칠해지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습니다.

 그럼 건강한 자기성찰이란 어떤 것인가? 위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의 그림자, 자신 안의 어둠을 그냥 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인이 될 가능성과 악인이 될 가능성이 모두 다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메마른 땅에 샘이 솟듯이 연민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건강한 자기성찰을 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회적 범죄인들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보면 됩니다. 어떤 본당에서 건강한 신앙인 콘테스트가 열렸습니다. 건강한 신앙인을 사목회장으로 선발한다는 공지와 함께였습니다. 그래서 본당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나섰습니다. 그런데 후보자들이 면담실에서 기다리는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본당신부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책상 위 신문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침 신문 기사 중에 흉악범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서 모두 입에 침이 튀도록 쳐죽일 놈이라는 둥 저런 놈은 아예 씨를 말려야 한다는 등 분기탱천해 입담을 푸는데, 느닷없이 본당신부가 들어왔습니다. 본당신부는 "여러분 중에는 총회장이 되실 분이 없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자들이 "아니 왜 우리를 폄하하는 것이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부는 "총회장직을 하려면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다 들어야 하는데, 여러분처럼 화가 많으면 화병에 걸려서 일찍 돌아가실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여러분 건강을 생각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니 마음 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더랍니다. 그리고는 구석에서 조용히 흉악범을 위해 기도한 사람을 총회장으로 뽑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처럼 병적인 자기성찰은 감당키 어려운 분노를 불러오지만, 건강한 자기성찰은 연민을 불러옵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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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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