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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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99) 돌부처인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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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 남편은 별명이 돌부처입니다. 싫은 일이건 좋은 일이건 거의 감정표현을 하지 않고 삽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싫다 좋다 말이 있어야 하는데, 남편은 한결같이 "시간이 약이야. 다 지나가면 잊는 거야. 긍정적으로 살자"면서 싫은 표정이나 행동조차 하지 않고 제가 싫은 기색을 보이면 한심하다는 듯 쳐다봐서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그런 제 남편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칭찬일색입니다만, 저는 제 남편을 대할 때마다 영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잘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마음이 좀 답답하시겠습니다. 남편 속을 모르시니 말입니다. 우선 답부터 이야기하자면 남편은 감정처리를 하는 데 있어서 잘못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느낌 여부에 있습니다. 느낌을 갖고 살면 살아 있는 사람이고 느낌이 없다면 죽은 사람이겠지요.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느낌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이 느낌은 외부환경이나 자신의 심리적 상태에 따라서 편안한 느낌과 불편한 느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외부 대상이나 일들이 나에게 호의적이면 느낌이 좋고, 적대적이면 불편한 느낌이 들겠지요. 또한 외부환경이 편안하다 하더라도 내 마음이 속상한 상태면 불편한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모든 사람은 다 편안한 느낌을 추구하고 불편한 느낌은 할 수 있는 한 피하려고 합니다.
 
 이런 인간 본성을 이용한 것이 광고물들이지요. 느낌이 좋은 사람이라느니, 느낌이 좋은 차라느니 하면서 사람들 구매욕구를 충동하지요. 그런데 우리 인생살이는 광고물이나 영화처럼 늘 즐겁고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때로는 싫은 사람을 만나기도 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견디기 어렵고 힘겨운 불편한 느낌을 하는 수없이 직면할 때가 잦습니다.
 
 이런 때 심리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도피수단을 강구합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께 이런 느낌을 모두 가져가시라고, 이런 느낌을 느끼지 않는 은총을 달라고 기도하거나 남편처럼 `시간이 약이야,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져`하는 자기최면을 걸면서 불편한 느낌을 외면하려 합니다.
 
 심지어 `긍정적으로 살자`면서 불편한 자기 느낌을 무의식 안에 매장해버리기까지 합니다. 얼마나 불편한 느낌이 싫었으면 그렇게까지 할까 하겠지만, 느낌을 그런 식으로 무지막지하게 다루면 자칫 심리적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느낌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억압하고 무시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안에 억압됐다가 큰 힘을 갖고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공격하거나 타인을 공격할 수 있고, 우리 자아를 조종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불편한 느낌을 없애려고 하다 보면 긍정적 느낌마저도 느끼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기기 쉽다는 것입다. 소위 무감각한 사람, 사는 맛을 모르는 사람이 돼버리는 것입니다. 신학에서도 느낌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통찰이 있습니다.
 
 신학에서 주님 본성은 신성과 인성으로 구성된다고 말합니다. 참 하느님이자 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래전 일부 신학자들이 주님께서는 오직 하느님일 뿐, 사람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라는 인간 껍질을 입고 수난과정을 고통 없이 거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하는 `가수난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생긴 넌센스인데, 만약 그들 말처럼 주님께서 아무런 느낌이 없는 분이시라면 우리가 그분을 깊이 흠모하고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렇게 무심한 신적 존재는 숭배의 대상은 될지언정,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적 존재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슬프실 때는 눈물을, 고통스러울 때는 아픔을 느끼신 분이셨기에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그 분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기도를 합니다.
 
 느낌은 특히 상담에서 아주 필수적입니다. 상담가가 살아오는 동안에 아무런 불편한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면 그 상담가는 자격미달입니다. 느낌이 없다면 공감이 생기질 않고, 그저 머리로 말해주는 기계적 상담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느낌은 그것이 아무리 부정적이고 불편한 것일지라도 피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느낌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편식을 하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몸이 건강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매님께서는 남편에게 이런 설명을 해 드리시고 자연스럽게 살라고 조언하셔서 자존심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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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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