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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103) 중독성 신앙생활(하)

창간 23돌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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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허영심에서 비롯된 중독성 기도
 
 
인간의 정신은 외적 자극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신체를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은 외적 자극을 통해 끊임없이 양육됩니다. 이것이 정신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고, 결코 완벽한 균형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즉, 정신세계는 상대적 안정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융은 정신적 균형을 회복하려 일시적으로라도 세상 감각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고 했고, 그런 의미에서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정신세계는 열림과 닫힘의 연속성에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허영심에서 비롯된 중독성 기도는 폐쇄적입니다. 허영심이란 열등하고 부족한 느낌을 말합니다. 허영심은 개인의 존재 목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들을 세상 누구보다도 중요하고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특히 여러 가지 조건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신앙공동체는 그들이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고 지배하기 좋은 토양을 가진 곳입니다. 이들은 과도한 기도나 혹은 인정받기 어려운 사적 이적들을 통해 사람들 관심과 존경을 받고자 하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성공하고 나면 나름대로 세력을 확보한 뒤 신앙공동체 안에서 정신적 터줏대감 노릇을 하면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신자건 성직자나 수도자건 간에 비난과 모함으로 몰아붙여 자신들 터가 흔들리는 것을 방어하려 합니다.
 
 이렇게 허영심에서 비롯된 기도에 중독된 사람들은 심리적 폐쇄 정도가 도를 벗어날 정도로 심해서 `교주 콤플렉스` 같은 병적 콤플렉스에 걸리거나 정신병에 걸리게 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4. 중독성 자기비난식 기도
 
 가톨릭교회 신심 행위 중에 자기성찰이란 것이 있습니다. 자기성찰은 자신이 하느님 뜻을 따라 살고 있는지 자기 길을 점검해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심리치료에서 자기탐색과 유사한 것으로, 자신의 삶을 좀 더 건강하고 유익하게 만들기 위한 신심 작업입니다.
 
 이런 자기 점검 행위는 비단 가톨릭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 영적 삶을 희구하는 종교들이 가진 공통적 자기수련 방법입니다. 그런데 간혹 신자 중에 자기성찰과 자기비난을 혼동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자기비난의 정도가 심각할 정도로 강해서 정신적 문제와 신경증적 증세(종교적 우울증과 불안증, 강박증 등)에 시달리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분 중 상당수는 대개 어린 시절 성장 과정에서 심한 열등감이나 불안감을 안고 살았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일정 기간 심리상담을 받고 나면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그런 기도 방법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기 비난을 지속적으로 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왜 병적 신앙생활 양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요?
 
 보상감소 이론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을 유발해 관심과 동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즉, 자신을 비하할 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부정하고 격려해주면 스스로 부족하게 느꼈던 자신감이 회복되는 느낌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또 침울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수준을 낮추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비난이 심한 사람들, 아무리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자학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이런 여러 혜택을 얻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 때문에 자학중독적 기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생활은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장기간 지속하면 주위 사람들이 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게 됩니다. 왜냐면 그런 사람에게서는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고, 달래주느라 지친다는 느낌만 받기 때문입니다.
 
 또 자학중독적 사람들은 주위 사람마저 우울하게 만드는 `오염의 근원` 역할을 하므로 점차 사람들이 그를 멀리하거나 떠나게 됩니다. 정작 본인은 버림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로 인해 보상이 감소하게 돼 우울증에 걸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병자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신앙생활이란 주님 도움으로 기도의 삶을 통해 마음과 몸의 건강을 되찾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는 명의가 있는가 하면 자기 마음대로 환자를 다뤄서 병을 악화시키는 돌팔이가 있는 것처럼, 신앙공동체 안에도 신자들을 건강한 삶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병적 삶으로 이끄는 `사이비 교주` 같은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고 또 멀리해야 합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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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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