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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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72>사람과 가정과 사회를 위한 경제를 생각하며

돈 나고 사람 나는 세상,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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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세상이 자연스럽게 변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뜻을 갖고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대가족`이란 말 대신 `지구촌` 혹은 `세계화`란 말이 더 익숙하다. `핵가족`이란 말 대신 `단독세대`란 말이 더 익숙하다. `혼인 기피` 혹은 `저출산` 현상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사람과 돈` 관계의 변화가 있다. "사람 나고 돈 났다"고 했지만, 이제 그 말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음을 체험하고 있다.
 
 #눈부신 고도 성장의 그림자

 무상보육(無償保育) 논란이 어지럽다. 올해부터 0~5세 영유아의 무상보육(보육료와 양육수당 지급) 대상이 소득 하위 70에서 모든 계층으로 확대됐고, 필요한 재원 중 중앙정부 보조를 서울은 20, 다른 지역은 50로 정했지만 그에 대한 재원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입법부가 서울은 국고 보조를 40로, 다른 지역은 60로 늘리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행정부(기획재정부)의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재원이 모자란다는 것은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세수(稅收)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한정된 가용 재원의 사업 우선순위와 배분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으며, 이 둘의 결합일 수 있다.

 혹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지 모른다. "요새 아이들은 애를 낳지 않으려 한다", "아이를 낳아 놓으면 다 알아서 큰다", "우리 어렸을 때는 유아원, 유치원, 어린이집 그런 것 없어도 다 잘 컸다" 하고 말이다. 그러나 마음뿐일 게다. 고생 마다않고 다 키운 당신 자식들이 손자들을 낳고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알아서 큰다", "부모가 키워야 한다",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하는 보육에 대한 태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일제 강점과 해방과 한국전쟁이 초래한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우리는 앞뒤 가리지 않고 고도 압축성장의 속도전에 뛰어들었다. 도시화와 저임금의 노동을 감수했고, 이른바 서민생활물가를 통제함으로써 성과를 낸 듯하다. 저임금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강제했고 물가는 자유를 얻었지만, 시민의 생활은 더욱 불안해졌다. 거기다 정보ㆍ통신ㆍ교육의 확대는 원초적이든 사회적이든 욕구와 필요를 팽창시켰다. 보육의 욕구와 필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성장과 분배를 이질적 두 범주로 구별하며 성장을 우선하고 분배를 소홀히 한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시민의 욕구와 필요를 모두 충족시킬 경제는 있을 수 없다. 사람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경제를 위한 사람에 몰두하는 한 더더욱 그렇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은, 혹은 생각했더라도 일부 특정 집단만을 위한 경제성장의 대가는 다수 시민과 가정과 사회의 소외다. 사람은 생산 수단 가운데 하나로 전락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으며, 대신 경제적 능력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는 데 너무나 익숙하다. 경제적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는 사람은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고 말았다.
 
 #돈에 끌려가는 인간의 삶

 자연스럽게 가정은 해체됐다.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는 원동력을 남녀 사이의 무상 자기증여보다는 주로 경제적 능력에서 찾는다. 노동력을 상실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어르신을 돌보는 일은 가정에 짐이 됐고, 혼인 기피와 초저출산이 자연스런 현상이 됐으며, 축복이 돼야 할 자녀의 양육은 부담이 되고 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사는 공동체를 사회라고 한다면, 그리고 이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가 경제활동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그 경제가 사회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목적이 돼 버렸다. 사회가 경제를 꾸려가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사회를 압도하고 있다. 이를 `경제독재`라고 한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무상보육의 논란은 `돈 나고 사람 났음`을 드러내는 한 현상일 뿐이다. 무상보육을 축소, 포기하지 않는 한 해법은 증세로 재원을 확보하거나, 보육사업을 다른 사업보다 중요하게 여겨 재원을 우선 배분하거나, 그도 어려우면 빚을 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기업의 법인세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며 낮추고, 수조 원을 들여 전투기를 사들이고 해군기지 건설은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국채나 지방채 발행으로 빚을 내 다음 세대에게 떠넘긴다. 가장 힘없는 영유아의 삶을 `팔자`로 내모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 밥 먹는 것 갖고 어른들이 꼴사나운 모습 보이더니, 이제는 그보다 더 어린 영유아 돌보는 것 갖고 그런다. 이제 곧 할아버지 할머니들 돌보는 것 갖고 그럴 것이다. 결국 돈 벌어 바치지 못하고 돈만 드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짐이라 여긴다. 참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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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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