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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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18> 국가의 실패를 경계하며 (1)

무능·부패 위험 도사리는 ''큰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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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초등학교`라는 용어를 국민학교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다. 컴퓨터에서 국민학교라고 자판을 두드리니 자동으로 초등학교로 변환될 정도로 국민학교는 이제 낯선 용어가 됐다. 아마 지금 아이들에게 "옛날에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했다"고 말하면 그런 말이 있었냐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집단 발전을 위한 개인의 획일화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쓰던 시절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을 거역할 수 없는 절대가치로 여기던 때였다. `국민교육헌장`이란 것도 있어서 모든 학생이 달달 외워야 했다. 시험에는 그 헌장의 글자 수가 몇 개인지를 맞추는 문제 외에도 지문 가운데 괄호를 만들고 빈칸을 쓰는 문제도 곧잘 출제됐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첫 구절은 아직도 필자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 중학생이 됐을 때 쯤,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것이 생겼다. 전체 조회시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혹은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5시가 돼 국기 하강식이 거행될 때면 배경음악과 함께 국기에 대한 맹세가 확성기를 통해 흘러 나왔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모든 학생은 꼼짝 않고 서 있어야 했다.

 그 시절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집단의 번영을 위해 개인의 개성은 드러날 수 없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교복이었을 것이다. 머리도 자유롭게 기를 수 없었고 치마 길이조차 개인 자유 영역에 속하지 않을 정도였다. 대학생에게도 교복이란 것이 있었다. 배지가 있어서 소속감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절이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획일성`이다. 그 획일성 앞에 개성을 드러내는 건 극도로 제한됐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런 획일성이 강요됐다. 정치 분야에서 이념을 달리하는 정당 활동은 엄격하게 제한됐다.

 경제 분야에서도 기업은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라기보다는 정부 주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필요한 도구였다. 문화 분야에서는 의례 검열이란 것이 있었고, `가정의례 준칙`이 있어서 결혼과 장례에 관해서도 공권력이 개입했다. 이런 획일적 사회에서 개성, 다양성, 자유 같은 가치는 살아 숨쉬기 어려웠다.

 #전체와 개인의 가치

 이 시기 우리 사회는 이른바 민주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발전 대신에 개인으로서의 주체성과 시민으로서의 자유가 소중한 가치로 자리 잡게 됐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우리 의식과 생활에서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영광과 개인으로서의 주체성과 자유의 가치가 꼴을 달리하면서 어지럽게 뒤섞이게 됐다.

 국가와 민족이 있어야 개인으로서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들도 있고, 국가는 수단이며 민족은 개념에 불과하며 나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당연한 듯이 이런 극단적 주장은 좌ㆍ우와 진보ㆍ보수의 이념으로 포장돼 수시로 충돌한다. 본성상 불가분 관계인 인간의 개체성과 사회성을 물리적으로 양분해 대립시켜 편가름 함으로써 이익을 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의구심을 떨 칠 수 없다.
 
 #무능과 부패로 인한 국가의 실패

 경제학에 `정부의 실패`라는 용어가 있다. 정부가 경제 분야에 개입함으로써 경제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를 말한다.
 정부의 실패 원인으로는 무능과 부패를 꼽을 수 있다. 정부도 당연히 사람이 꾸려가고, 정치인이든 관료든 유한한 사람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도 당연히 무능할 수 있다. 경제생활에서 다수의 시민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이들이 무능하다면 그 결과 역시 부정적이다.

 게다가 이들도 사람인지라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부패할 수 있다. 정부 부패는 당연히 시민 피해로 나타난다. 아마도 최악의 경우는 무능함과 부패의 결합일 것이다. 경제현안을 진단하고 실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사리사욕의 부패가 더해지면 그 폐해는 가늠할 수 없다.

 한 나라에 두 개의 정부가 있다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함으로써 경제상황을 바로잡을 기회를 갖겠지만, 정부는 하나뿐이므로 표현 그대로 독점적 지위를 가진다. 독점적 지위가 안정성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무사안일과 불합리한 관료주의를 불러올 수도 있다. 경제 분야에서 정부의 무능과 부패, 무사안일과 관료주의는 시민 절대다수의 경제생활을 곤경으로 내몬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부의 실패를 확장해 국가의 실패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비경제분야 곧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법질서 붕괴, 국방 실패, 교육과 문화의 왜곡 따위 현상으로 국민이 겪는 고통이 정도를 넘을 때, 우리는 국가의 실패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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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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