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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7)달신을 숭배하는 마음

달신, 운명 결정하는 왕권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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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신
 동양이나 서양이나 옛사람들은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숭배했다. 일월성신은 해, 달, 별이다. 여기에 깃든 영험한 기운이 인간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다. 고대 근동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특히 `달`을 섬겼는데, 이는 그들의 왕권 신학과 밀접히 관련됐다. 히브리인들도 달신 숭배와 무척 깊게 연관돼 있었다. 때로 그들은 달신 숭배에 적대적이어서 달은 철저하게 탈신화됐지만, 달신(月神) 숭배와 관련된 고대 근동의 문화적 흔적은 구약성경 곳곳에 매우 진하게 남아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달신 숭배의 대표적 고장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의 종교 가운데 태양신이 아니라, 달신이 왕권을 상징한 유일한 곳이다. 달은 왕권 신학의 핵심 상징으로서 종교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신바빌론제국 마지막 왕인 나보니두스 비문 등에서 달신은 초승달로 묘사되기도 한다. 달신이 초승달로 묘사되는 것부터 우리 정서와는 다른 점이다.

 #수메르의 달신 `난나`
 우리는 보름달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꽉 찬 보름달은 마음에 떠올리기만 해도 넉넉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중동인들은 정반대의 생각을 지니고 있다. 보름달은 이미 꽉 찼으니 앞으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초승달은 이제부터 찰 것이기에 앞으로 더 차오를 것이라고 생각해 희망으로 여긴다. 그래서 달신을 초승달로 묘사한 것이다. 이런 정서적 차이가 구약성경에 스며들어 있다. 현대 이슬람에서 초승달을 중요한 상징으로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달신의 수메르어 이름은 `난나`(Nanna)다. `아누`에 이어 최고신에 오른 수메르의 주신(主神) 엔릴의 아들이 바로 난나다. 난나는 최고신은 아니지만, 최고신의 피가 흐른다.

 수메르 시대 난나는 우르(수메르의 도시 국가)의 주신이었다. 신바빌론 시대에 접어들어 달신 `신`은 하란(메소포타미아 지역 문화ㆍ상업 도시)의 주신으로 유명해졌다. 달신 숭배의 근원지가 우르와 하란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 두 도시는 구약성경에서도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음양설에서 해와 달은 양과 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해는 달보다 세고 크며 우월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수메르는 정반대다. 달신 `난나`는 태양신 `우투`의 아버지다. 분명 달신이 태양신보다 우월한 존재다.

 #달은 왕권의 상징
 달은 왕권의 상징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달이 `별들의 군대`를 거느리고 인간의 운명에 관한 신탁을 내리며, 정의를 판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달신의 신학은 자연스레 왕권 신학과 연결된다. 달신은 태양신과 별신과 함께 `천체의 삼신`을 이룬다. 물론 달신이 중심이다.

 달은 차고 기우는 변화가 매우 규칙적이다. 그래서 출산과 성장, 노화, 죽음이라는 인생의 단계에 대입시키기가 쉬웠다. 이를테면 초승달은 달의 탄생이다. 계속해 보름달까지 차오르는 것은 성장이다. 보름달 이후 저무는 것은 노화이며, 마지막 그믐달은 죽음이다. 또 28일마다 정확하게 차고 기우는 것도 달의 규칙성을 높여줬다. 그래서 달은 때를 알려주는 역할도 맡았다. 유목민들은 달을 보고 이동할 날짜를 결정했다. 가축의 교미 시기도 달을 기준으로 결정했다. 이렇게 달과 관련한 문화는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또한 달신은 풍요와도 관련돼 대중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달신 숭배에서 초하루는 무척 중요했다. 초하루가 되면 달은 부활한다. 밤하늘에 손톱만큼 달이 보이기 시작하는 매달 초하루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종교적 절기다. 구약성경에서도 보름달보다는 초하루가 훨씬 중요하다. 바로 이런 고대 근동의 풍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를 알고 구약성경을 읽어야 한다.

 달신의 다양한 역할 가운데 `정의의 수호자`는 일찍이 태양신으로 넘어갔다. 고바빌론 제국의 함무라비 임금은 법전을 태양신에게서 받았다. 그런데 태양신의 위치는 달신에 비해 불안해 보였다. 수메르의 태양신 우투는 남신이지만, 셈족의 태양신 `샤마쉬`는 본래 여신이다. 우가릿 신화에서도 태양신 `샵슈`는 여신이다. 그런데 달신 난나와 신이 합쳐졌듯이 우투와 샤마쉬도 융합돼 훗날 하나의 신으로 이해된다.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샤마쉬는 남신이 돼 버렸다. 태양신의 성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역사적 변천 과정은 태양신이 훨씬 약하고 달신이 원래 강했음을 드러낸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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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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