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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최초로 은둔자가 된 트라피스트 수도승

[토머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15. 홀로 있지만 홀로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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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필자는 2015년 ‘겟세마니 만남 IV’(Gethsemani Encounter IV : 북미 수도승적 종교 간 대화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겟세마니 수도원을 방문하였다. 모임 마지막 날, 가톨릭 남녀 수도승뿐 아니라, 다른 종교의 수도승들은 토마스 머튼의 은둔처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지금도 겟세마니 수도승 중 한 명이 은둔처로 여전히 사용하는 이 작은 공간은 벽난로가 있는 거실과 작은 침실, 경당, 주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참 소박하고 단순한 공간이었다. 주변은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상징하는 십자가와 수레바퀴가 은둔처 앞에 세워져 있었다.

문득 머튼이 3년 가까이 머물렀던 이곳에서 침묵과 고독 가운데 며칠만이라도 머물며 피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튼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 쓴 일기를 읽으며 그의 일상과 깊은 영성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느껴질 만큼 그곳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영적인 힘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은둔처 거실 책상에 잠시 앉아 머튼이 이곳에서 “홀로 있으면서도 홀로 있지 않다”고 한 말을 묵상해 보았다. 홀로 있으면서도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고, 숲 속 나무들과 그 사이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으며 성령과 함께 찬가를 부르며, 겟세마니에서의 예수님의 고독 속에 들어가 그분과 하나 되어, 세상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느꼈을 머튼을 상상해 보았다. 홀로 있으면서도 찾아오는 많은 방문객과 맥주를 마시며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그들에게 내적 위로를 주었을 머튼을 마음속에 그려 보았다. 그리고 의문이 생겨났다. 그의 깊은 고독을 향한 갈망과 동시에 드러난 이 외적, 내적 자유로움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어떻게 홀로 있으면서 우주 만물과 사람들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초-문화적 의식(Trans-cultural Consciousness)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머튼의 사회 참여는 관상적 체험을 통한 ‘관상과 활동의 통합’한 열매였다. 심지어 그가 사회정의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할 때에도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일치에 도달하기 위한 고독과 침묵을 향한 열망은 지속되었다. 그가 수도원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은둔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허락을 받은 1965년에 그의 고독을 향한 간절한 바람은 실현되었다. 아빠스에게서 모든 시간을 은둔처에서 보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을 때, 그는 이 순간을 변형적인 체험으로 묘사하고 있다.



“제가 진정한 고독을 갖게 된 지난 5일은 저에게 ‘계시’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질문들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은 해답이었습니다. 거듭거듭 항상 희망했고, 항상 찾아왔던 이 삶을 저는 이제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평화, 침묵, 목적, 의미의 삶. 그것은 항상 쉽지 않지만 축복받은 구원적인 노고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에 관한 모든 것이 (이곳 은둔처에서) 보답받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은둔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그분의 ‘계시’였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은둔처에서의 깊은 고독을 ‘축복받은 구원적인 노고’로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이 새로운 시작을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참된 고독의 삶을 당신의 축복으로 내려주셨으며, 하느님 앞에 홀로 있는 이 축복된 노고를 통해 그분의 구원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은둔처에서의 삶은 머튼에게 새로운 내적 변화를 가져다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초-문화적 의식(trans-cultural consciousness)이었다. 머튼 학자, 윌리엄 샤논(William Shannon)은 그의 저서 「고요한 등불」에서 이 사건을 머튼이 자신의 깊은 내적 변화와 초-문화적 의식이 시작되는 일종의 상징이라고 평가한다.

“1965년은 머튼의 삶에서 결정적인 변화로 기록된다. … 그는 마침내 숲 속에서 온전히 은둔적 삶을 살게 되었다. … 이 장소의 변화는 깊은 내면의 변화를 상징하고 있었다. … 그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초-문화적인 감각 안에서 진정한 보편적인 사람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샤논은 머튼의 은둔자로서의 고독한 삶을 ‘초-문화적 상태’의 ‘진정한 보편성’을 지닌 인간과 연결하고 있다. 머튼의 새로운 의식은 자신의 종교와 문화적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실재 안에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진화한 것이다.

이 은둔처에서 그는 하느님과 일치된 자아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하느님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세속과 자신의 수도 공동체로부터 더 멀리 떠나 자비와 열림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1960년대 중반 그의 의식은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의 개념과 함께 ‘우주적 균형(cosmic proportions)’으로 확장되어 갔다. 그래서 그는 고독을 넘어 세상을 향해 외치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지닌 이들과 더불어 참된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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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0-1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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