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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7)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을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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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개개인은 객관적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뇌에서 익숙해진 관점으로 사물을 재구성해 인식한다. 이러한 뇌 현상은 시각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 과정에도 적용된다.

체칠리아씨가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면 자신이 체험한 실제적 체험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거쳐 재구성된 주관적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 습관을 형성하는 뇌 영역의 배측선조체의 영향력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경험을 부정적 자기개념과 상응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내적 세계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뇌 안에서 습관적으로 반복 재생되는 정보에 의해 재구성된 주관적 해석이다. 객관적으로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각자의 내면 안에서는 서로 다른 사건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뇌신경학적 설명은 앞서 언급한 심리적 효과이론을 보완해 준다. 어린 시절 체칠리아씨는 사랑하는 엄마와 헤어진 후 새엄마와 살면서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무조건적 사랑을 받아야 할 어린 시절에 체칠리아씨는 새엄마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그 결과 체칠리아씨가 바라보는 세상은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이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잠재적인 포식자들이었다. 불안정하고 위협적인 세계관과 인간관은 체칠리아씨가 체험하는 모든 대인관계를 생존과 안전의 관점으로만 인식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자신은 늘 피해자이며 따라서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적 생존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체칠리아씨가 집 밖을 나서면서 어떤 사람이 자신을 위협하거나 공격할 것인지를 염려하며 대책을 세우는 습관이 생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체칠리아씨처럼 사람을 늘 경계하면서 위험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면 상대방으로부터 적대적 행동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신을 위협한 택시 운전사와 지하상가의 상인들은 모두 그들을 잠재적 공격자로 인식한 체칠리아씨의 적대적 언행으로 인해 감정이 격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공격자로 인식한 체칠리아씨의 무의식적 예기불안이 결국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도록 단초를 제공한다. 동시에 체칠리아씨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부의 부정적 사건들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부정적 측면은 확대 과장하고 긍정적 측면은 축소 왜곡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체험을 자기비하와 피해의식에 연결하여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너구리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탈출구를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등장한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해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 그만 체칠리아씨를 향해 돌진하게 만든 것이다. 체칠리아씨는 이 사실을 어렵게 기억하고 나서 씁쓸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체칠리아씨는 그동안 냉담했던 신앙생활을 되찾으며 점차로 세상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극복해 나가는 영성상담을 받게 되었다. 배측선조체가 무의식적으로 이끌었던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부정적 관점은 서서히 신앙의 관점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정적 관점과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인해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살아갈 대상으로의 인간관 회복은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 주변엔 부모에게서조차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 추위에 떨고 배고픔에 지친 나그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피난처와 일용할 양식이다. 교회는 바로 이런 이들의 영원한 안식처이며, 주님은 영원히 이들의 배를 불리시는 생명의 양식이시다.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신천지로 발걸음을 돌렸던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분명 춥고 배고픈 영혼이었을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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