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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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땅’, 다른 누군가에겐 ‘고난의 땅’

[엉클죠의 바티칸 산책] (16) 2000년 전 갈릴래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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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1월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로마 시내 행려자와 가난한 이들을 바티칸으로 초대해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현대 사회의 가난한 이들 형편은 성경 속 갈릴래아 주민이나 소작농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CNS 자료사진】



하느님은 백성들의 삶이 가장 절박한 곳에 가장 먼저 가신다고 하였습니다. 2000년 전 갈릴래아 백성의 삶은 어떠하였을까요. 한마디로 말해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성경은 당시의 상황을 담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6)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땅

백성들은 ‘어둠 속’에 앉아 있었고, 갈릴래아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땅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전해주는 예수님의 말씀과 예화가 성경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신앙적 해석이 아닌 현실적 설명 또는 경제사적 분석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먼저 ‘빵의 기적’에 대한 증언입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사흘 동안’이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군중 가운데 상당수가 사흘 동안이나 굶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빵의 기적을 일으킬 때마다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한 장정만 4000~5000명이 모였다고 하니 전체 인원은 줄잡아 1만 5000명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굶주린 인파가 구름처럼 모인 것이지요.

성경에는 ‘빵의 기적’이 두 번 소개됩니다.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입니다. 하루 세끼 해결을 못 하는 절대 빈곤층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흘 굶으면 포도청 담장도 넘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단식도 하셨지만, 보통 사람들은 사흘 굶으면 눈이 뒤집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마태 12,1)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길 가다 말고 밀이삭을 뜯어 먹었을까. 그것도 안식일에! 명색이 예수님 제자라는 분들이 이 정도였으니, 장삼이사 백성들은 어떠했을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5-38)는 사회상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사건 개요는 포도밭 소작인들이 소작료를 받으러 온 주인의 종(마름)과 아들을 살해한 다음 포도밭을 차지하려 했다는 내용입니다. 소작농들의 범죄는 단순 살인사건이 아니라 전형적인 하극상입니다. 또 포도밭 갈취 시도는 단순한 절도 행위가 아니라 경제 기본질서(사유재산권)를 파괴하려 한 공안 범죄입니다. 예수님이 억지로 지어낸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종종 일어났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극심한 빈부 격차

모든 범죄에는 동기가 있습니다. 소작농이 이런 끔찍한 죄를 저지른 동기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과다한 소작료였을 것입니다. 소작료 분쟁은 갈릴래아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산업화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는 동양이나 서양 어디서나 있었습니다. 소작료 분쟁이 대규모로 조직화할 경우 소작쟁의나 농민 폭동 또는 농민 전쟁으로 비화하기도 했습니다. 소작료는 보통 50%였습니다. 소작인이 수확량의 절반을 지주에게 바치는 것이지요. 악덕 지주들은 최고 70~80%를 받기도 했습니다. 갈릴래아에는 1%의 사람(지주)이 농토의 50%를 소유하고 있었답니다. 땅 한 평 없는 소작농이 너무 많았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습니다.

백성들은 지주에게 소작료만 낸 게 아니었습니다. 세리(로마 제국)에게는 세금을, 제사장에게는 성전세(십일조)를 내야 했습니다. 소작료 세금 성전세, 그들에게는 살인적인 삼중고였습니다.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로 수확량이 대폭 줄어든 때에도 지주들은 소작료를 깎아주지 않았고, 세리들도 자신들의 몫을 챙겨갔습니다. 더구나 세금이나 소작료를 제때 내지 않을 경우 그 처벌이 매우 엄했고 난폭했습니다. 백성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갈릴래아는 기득권층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지만, 백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고난의 땅이었고, 예수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수려한 풍광만 남아 있고, 백성들의 굴곡진 삶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갈릴래아를 찾는 수많은 순례자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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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4-0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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