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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 (9)섭리 깨는 행동이 ‘양식’을 ‘독’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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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치가 있다. 이 명제는 과연 옳은 것일까?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묵시 4,11)라는 성경 말씀에서 어렵지 않게 답을 얻을 수 있다. 창조론을 부정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고까지 역설했으니, 종교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긴 힘들겠다.

하지만 당장 코로나19를 끄집어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 주님의 뜻인가?”라고 묻는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코로나19를 생명체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 이견이 있지만, 어쨌든 존재하는 모든 것에 좋은 의미를 부여할 순 없을 듯 보인다. 국내에서만 매년 25명가량이 산행 중 야생 독초를 채취해 먹고 목숨을 잃고 있다. 자연은 인류에게 선물이 아니란 말인가?

독성으로 치자면, 커피나무도 뒤지지 않는다. 식물의 독성분은 대부분 알칼로이드인데, 카페인(Caffeine)이 그중 하나다. 알칼로이드는 ‘~인(~ine)’으로 끝나는 물질들로 질소를 포함하고 있다. 모르핀, 니코틴, 퀴닌, 에메틴, 아코니틴 등 알칼로이드는 중추신경에 작용함으로써 일정 농도 이상이라면 포유동물에 치명적이다. 남아프리카에 자생하는 지프바르(gifblaar)는 잎사귀 2~3장만으로 양 1마리의 생명을 앗아간다.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배는 독성분이 있는 당근을 달여 만든 즙이었다고 전해진다.

알칼로이드는 동시에 인류에게 축복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1억 2500만 명 이상이 커피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잠을 쫓고 피로를 잊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까지 따지면 전 세계 성인 인구의 절반가량이 카페인을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커피나무의 형제들을 보면 유독식물과 약용식물을 가르는 기준이 모호해진다.

진화론에 따르면, 커피나무는 1400만 년 전 카메룬의 치자나무에서 분화해 커피의 본성을 갖게 됐다. 치자나무의 껍질에 들어 있는 퀴닌 역시 독성이 강한데, 말라리아 특효약으로 개발되면서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약용식물로 대접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용을 금지한 리우토근은 에메틴 성분 덕분에 아메바성 이질 치료제로 사용되면서 수많은 목숨을 구하고 있다. 커피의 성분들은 치매와 암 치료에 유용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치자나무에서 갈라진 커피나무의 가족(科)들은 독이면서 약으로 존재한다. 하나의 나무가 환경에 따라 새로운 특성을 획득하거나 다양하게 분화하는 것을 진화의 방향이라고 진화론자들은 설명한다.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먹는 주체와 방식이 이 식물들을 진화시키는 동력이 됐을 수도 있다.

창조론의 견해는 이와 다르다. 모든 식물은 천지 창조 사흘째 날 생겼다. 창세기 때 식물의 모든 다양성은 완성됐으며, 인류의 요구와 쓰임에 따라 존재가 확인될 뿐이다. “구글에서 검색되지 않으면 있어도 있는 게 아니다”는 풍자와 맥락이 유사하다. 커피나무와 인류의 관계는 창세기 1장 29절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는 말씀에 설정돼 있다. 그런데 왜 종종 ‘양식’이 ‘독’으로 작용할까?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 “주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은 인류의 행동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진화에 의해 생겨난 게 아니다. 박쥐들이 사는 자연의 세계를 깨뜨리면서 인류에게 옮겨졌고, 생존하기 위해 돌연변이를 통해 저항하고 있을 뿐이다. 섭리를 깨는 행동이 양식을 독으로 만든다.

하느님은 본디 악한 것을 창조하지 않으시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가치를 찾아야 한다.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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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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