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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0. 이 노동자야말로 거룩한 사람임을

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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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동글동글하면서 조용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전 세계 이민자들이 모이는 라호즈레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온지도 16년째 되던 2018년에 마주친 프랑스인이다.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향해 침대 옆의 빈 의자를 가리키며 와달라고 권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가 수녀인 나에게 금세 마음이 열렸는지, 만난 지 불과 몇 분 만에 굴곡진 삶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저는 파리에서 줄곧 살았어요. 나이는 65세.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어요. 지금은 심장병이 말년을 괴롭히네요.”

그의 어머니는 재혼했고, 그는 15살 무렵부터 건축 현장에서 노동자로 막일을 했다. 앳된 중학생이 힘든 삶의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그 어린아이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있었을까. 어른들이 시키는 잡다한 일들은 모조리 했을 그의 힘든 어린 시절이 그려졌다.

그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단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자신의 삭막한 삶을 몇 초만이라도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춘기도 없이 엄마에게 생떼를 부릴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그는 또래 친구들이 책가방 들고 즐겁게 미래를 향해 힘차게 걸을 때, 그는 시멘트, 철근, 벽돌, 무거운 건축 자재들을 벗 삼아 고된 삶을 보냈다. 그가 보탠 일손으로 건물이 지어지는 모습을 보며 세월도 그렇게 흘러갔으리라. 나중에 그는 주로 페인트칠을 했다고 한다. 일당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어서였다고.

“그때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병상에 누워있는 그가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때를 회상했다. 그의 진지한 이야기를 나도 똑같이 진중하게 들어줬다. 그러나 가슴만 줄곧 먹먹해질 뿐이었다. 페인트공이었던 그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이어졌다. 무슨 곡예사도 아니고, 어떤 장치를 하고서 어떻게 페인트칠을 했었는지까지. 수도자인 나로서는 상상이 잘되지 않는 삶을 들으며 가슴으로 공감했다. 높은 건물에 매달려 페인트칠을 할 때엔 불안한 상태에서 얼마나 떨었을까.

그는 언젠가부터 가슴이 몹시 뛰는 고통을 겪기 시작했고, 결국 반신불수 지경에 놓이게 됐다. 동거했던 여인은 어린 딸을 데리고 떠나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혼자 남겨진 채 홀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평생 힘겨운 삶을 살았던 그가 신앙 이야기를 꺼냈다. 엄청난 긴장 속 고통의 삶을 그나마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이 자신의 마음 깊이 계심을 믿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신다는 굳은 신뢰로 제 삶을 견디며 살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비록 지금은 아픈 몸이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믿음을 간직한 이였다. 하느님 사랑을 늘 떠올리며 고난의 일생을 큰 용기와 믿음으로 노동자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나는 진정 이 사람이야말로 ‘거룩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누구라도 이렇게 이중삼중의 고통을 마주하면 원망과 자학, 후회와 한탄의 삶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심장병까지 얻은 그는 지금도 하느님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도 그의 믿음에 함께 힘을 보탠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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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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