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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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52·끝> 토마스 머튼의 종교간 대화 ④- “관상은 종교 간 대화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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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태국의 방콕에서 개최된 아시아와 서구 수도승 간의 첫 번째 회의에서 토마스 머튼은 비공식적으로 그러나 확신에 찬 선언을 하였는데, 이 선언을 통해 그의 사상과 영성, 종교 간 대화에 대한 결론을 맺고자 한다. 당시 아무도 머튼 자신을 포함해 이 회의가 그에게 있어 마지막 회의가 될지 알지 못했다. 뜻밖의 죽음 바로 전날 밤, 머튼은 존 모핏트(John Moffitt)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禪)과 그리스도교는 미래다.”



선(禪), 문화와 종교와 형태 초월한 의식

확신 속에서 한 그의 이 선언은 많은 질문을 갖게 한다. 그가 아시아 순례에서 티베트 불교에 진정으로 감동하였음에도 그리스도교의 관상적 수도승이 왜 선(禪)에 대해 언급한 것일까? 선(禪)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관계 안에서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선과 그리스도교만을 언급했다면) 그가 다른 종교들은 무시한 것일까? 선(禪)과 그리스도교를 통해 그가 고대하던 ‘미래’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모핏트는 머튼의 이 선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머튼이 선(禪)을 언급할 때 선은 일반적인 감각에서의 종교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해탈에 도달하기 위한 기술로서의 선을 의미한다. 그래서 선(禪)은 그리스도교 안에 ‘포함된’ 것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머튼이 선(禪)을 선(禪)불교와 구별할 때, 선(禪)을 ‘내적 깨달음을 위한 테크닉’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선(禪)을 ‘문화를 초월하고, 종교를 초월하며, 어떠한 형태를 초월하는 의식’으로 간주하였다. 그가 선(禪)의 관점을 통해 발견한 세계의 위대한 종교들의 공통된 영적 요소들은 관상적 혹은 깨어남의 체험을 통한 ‘인간 의식의 변형’과 ‘영적 해방’이었다.

그의 불교-그리스도교의 대화와 그의 수도승 간의 대화에서의 선구자적 업적과 수도 생활의 중심 주제가 바로 ‘관상’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선(禪)의 관점을 통해, 머튼은 인간 의식의 변형과 영적인 깨어남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다른 종교적 전통의 수도승들 혹은 관상가들 사이의 ‘관상적 대화’의 가치와 가능성을 보았다.

“선(禪)과 그리스도교는 미래다”라는 주장에서 ‘미래’와 관련하여, 그는 이 관상적인 대화를 통하여 수도승들이 ‘수도승 간의 친교’와 ‘영적 가족’의 형성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그들이 점점 물질화되고 갈라지고 있는 이 세상을 향한 인류의 근본적인 일치를 위한 증인들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토론토대학에서 종교 간 대화에 관한 머튼의 여정을 연구하는 동안 필자는 그가 선(禪)의 관점을 통해 미래의 종교 간 대화를 위한 ‘관상적 핵’을 발견했다는 확신이 생겼다. 필자는 ‘관상적 핵’은 ‘선(禪)의 핵’이라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禪)의 핵’이라고 표현했을 때, 불교에서 선(禪)이란 용어를 오랫동안 사용해 왔기에, 많은 이들이 즉시 불교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관상적 수준에서 종교간 대화 강조

아시아 전통 특별히 선(禪)과의 만남을 통해 머튼은 관상적인 대화가 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는 종교적 의식의 초월로서 선(禪)은 그리스도교를 포함하여 모든 아시아 종교적 전통 안에 있는 ‘관상적 핵’을 표현하고 있다고 믿었다. 비록 각각의 종교들이, 선(禪)의 깨달음, 힌두교의 삼매(Samadhi), 도교의 무위,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의 일치 등과 같이 관상 혹은 해탈의 체험을 다르게 이해하고 다르게 표현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우선적인 목표는 ‘궁극적인 자기-초월’ 혹은 ‘자기-변형’을 얻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머튼은 인간 의식의 변형과 영적 해방을 위한 관상적 수준에서 다른 종교적 전통과의 대화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는 많은 종교 전통의 ‘관상적 핵’이 깊은 영적인 수준에서 종교 간 대화를 지탱할 수 있는 것임을 내다보았다.

필자는 토마스 머튼의 영성에 영감을 받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관상은 종교 간 대화의 미래다!” 만약 우리가 하나의 영적인 가족으로서 평화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위대한 세계 종교들은 서로 다양한 방법으로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며, 이 모든 종교 간 대화의 심장에는 반드시 ‘관상적 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토마스 머튼의 종교 간 대화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그의 기도를 함께 바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오, 하느님! 우리는 당신과 하나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서로 마음을 열면 당신이 우리 안에 머무르시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개방성을 보존하고 우리의 마음을 다해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도와주소서. 오, 하느님, 우리는 서로를 온 마음으로, 온전히, 완전히 받아들임으로써 당신을 받아들이게 되고, 당신께 감사드리게 되고, 우리의 존재를 다해 당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가득 채우시고, 우리로 하여금 각자 다양한 길을 가면서도 사랑으로 결합되고, 이 한 분의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사랑이 승리했습니다. 아멘.”



※지금까지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를 연재해주신 박재찬 신부님과 삽화를 그려주신 하삼두 화백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어 작은형제회 호명환 신부의 ‘프란치스코 영성 배우기’(가제) 기획이 새롭게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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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0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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