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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26) 동심원 이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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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지나던 행인들이 도로에 넘어져 있는 차를 번쩍 들어 바로 세웠다는 기사를 보면서 그들이 한마음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에는 누구 한 사람 자신의 이득이나 나중 일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인류가 한마음이 되기를 꿈꾼 분이 계시다.

포콜라레 영성을 달리 일치의 영성, 친교의 영성이라고들 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태어난 이 운동이 복음적 사랑을 실천해 가던 중에,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하신 말씀에서 영감을 받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가능한 일일까? 더구나 ‘그들이 모두’!

간혹 긴 통화를 하곤 한다. 어려움에 처했거나 갈등을 겪는 지인으로부터 오는 전화를 받을 때다. 하느님께서는 내게 말재주를 주시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듣는 입장이 되곤 한다. 하지만 내게도 생각이라는 게 있으니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해 주고 싶은 이런저런 말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섣부른 조언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 뿐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항상 가장 좋은 답은 어려움에 처했거나 갈등을 겪는 본인이 찾아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잘 듣기 위해 노력했다. 한마음이 되어 줄 때 스스로 답을 찾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할 때도 드는 분심처럼, 집중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한번은 외국에서 하는 교육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참가국이 많아 통역 부스가 여럿 있었다. 그런데 유독 우리말은 서양 언어와 어순이 달라 다른 통역사들은 한 걸음 뒤따라가면서 동시통역이 수월한데, 우리 통역사는 서양 언어 한 문장을 끝까지 듣고 나서 시작해야 하니 그 어려움이 예삿일이 아닐 듯했다. 시작하려고 하면 이미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 버리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그 일을 맡은 이는 잠시도 말이 끊이지 않고 한 시간씩을 이어 갔다. 숨 멎을까 걱정되기도 했고 그의 수고가 너무 고맙기도 해서 휴식 시간에 다가가 감사를 표하며, 어쩌면 그렇게 쉬지도 않고 계속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그의 답이, “머리를 다 비운다”는 것이었다. 통역을 하는 순간에는 그에게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은 전혀 없고 말하는 이에게만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하얗게 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의 지혜가 내 삶에도 가르침이 되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도 그렇게 내 생각을 지우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나를 잃고 빈 마음으로 들으니 공감의 폭이 커졌고, 그것을 느낀 상대도 보통은 위로받거나 답을 찾아내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잘 들어 주는 것이 내게는 일치로 가는 첫걸음이 되어 주었다. 물론 진정한 일치는 마음으로 뿐 아니라 성체 성사를 통해 한 몸을 이룸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테지만….

사실 ‘하나가 된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사람 몸을 생각해 보니 알 수 있었다. 무언가 내게 달려들 때면 온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충격을 피하기 위해 몸 전체가 한꺼번에 반응하는 것이다. 눈앞에 뭔가 날아들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손이 얼굴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1코린 12,20)다. 그러니 ‘하나가 된다’는 것은 모두가 똑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몫을 잘하면서 서로 아끼는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곳곳에서 그리는 동심원이 합쳐질 때 예수님의 꿈도 앞당겨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장정애 (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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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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