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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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진리 안에 사랑이 구원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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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일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주님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가 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제 ‘진리의 성령’과 함께하는 삶으로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오늘 미사에서 은총을 구합니다.

9월의 마지막 주일은 이민의 날입니다. 우리 이웃에 실향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황청에서는 「국내 실향민에 관한 사목 지침」(2020.5)을 발표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코로나바이러스19의 위기 속에 가중된 실향민 고난을 이해하고, 형제애로 다가가 귀를 기울이며, 나눔과 환대에 동참하기를 당부하십니다.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기원전 6세기)는 이스라엘 멸망과 바빌론 유배는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의 속죄와 정화를 위한 하느님 정의임을 밝힙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과거의 죄 때문에 공동체에 연대책임을 내리는 벌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어찌 넘어갈 수 있느냐며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에제 18,25)하고 주님 정의를 판단합니다.

예언자는 주님께서 개인 공적에 따라 심판하시기에 개인 책임임을 일깨우고, 악습을 버리고 회개하여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생명을 얻는다(에제 18,27-28)고 선포합니다. 연대책임 때문에 고통을 겪어도 회개하고 변화될 주체는 사람이지 하느님일 수는 없습니다. 의인도 공동체 내에 악과 불의와 싸워서 공멸을 막을 책임이 있습니다.

제2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제3차 선교여행 중에 투옥된 에페소 감옥에서 에게해 건너 필리피 교우들에게 보낸 서한의 일부입니다. 주님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돕고 은총을 누리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한마음 한뜻으로 기쁨을 누립니다. 이기심과 위선이 아닌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당시 교회에서 즐겨 노래하던 ‘그리스도 겸손의 노래’(필리 2,6-11)를 전하며, ‘성덕의 모범’이신 예수 성심을 우리 안에 간직하라고 권고합니다. 참 하느님이시면서도 자신을 비우고 낮추신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기에 성부께서는 부활의 영광과 함께, ‘주님’이란 호칭과 세상의 주권을 부여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아들의 비유는 예수님의 가르침 권한을 문제 삼는 종교지도자들과의 논쟁(마태 21,23 이하)에 연결된 내용입니다. 그들이 그 자격의 출처를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요한의 세례 권한이 어디에서 온 것이냐고 반문하십니다. 백성들은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지만 지도자들은 그를 믿지 않았기에 말문이 막혀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주님께서도 답변을 거절하는 대신 그들의 태도를 자성토록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마태 21,28) 하시며 이 비유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만이 전하는 이 비유는 다른 형식의 필사본이 두 개나 더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과 본문 내용은 같으나 아들의 순서가 바뀝니다. 맏아들은 ‘예’라고 대답만 해놓고 포도밭에 일하러 가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싫습니다’ 한 뒤 뉘우치고 밭에 나가 일했기에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아들입니다. 또 다른 필사본은 내용까지 바뀌어 혼란스럽습니다. 맏아들은 싫다고 대답한 뒤 뉘우치고 간 반면, 둘째 아들은 ‘예’라고 대답만 하고 일하러 가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아들은 맏이가 아니라 둘째라고 전합니다.

중동지역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방문지에서 이 비유 이야기를 자주 나눈답니다. 그들에게 ‘어느 아들이 더 좋습니까?’ 물으면, ‘싫다’ 해놓고 실천한 아들보다 ‘예’라고 공손히 대답하고 실천하지 않은 아들을 더 좋아한답니다. 그들 문화의 핵심가치는 ‘명예’이기에 가정의 중심인 아버지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은 가문의 수치로 여깁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명예롭게 행동했는지를 묻지 않으시고,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31)고 물으십니다. ‘싫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회심하고 포도밭에 가서 일한 맏아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믿고 회개하여 하느님 나라의 시민권을 먼저 얻은 사람은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죄인이던 세리와 창녀들입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따르는 삶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주님께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마태 21,28).” 이르십니다. ‘포도밭’은 주님의 돌보심 아래 풍성한 열매를 맺는 교회의 은유이고,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사랑의 보금자리(이사 5,7; 요한 15,1; 아가 1,6)입니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말씀이고, 교회는 살아계신 하느님 목소리입니다. 주님 말씀에 ‘예’라고 응답하고 실천하는 사랑의 삶이 은총 속에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바라시는 아버지 뜻과 기도 속에 발견한 개인의 소명이 은총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아멘.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자만이 들어간다(마태 7,21).”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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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9-2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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