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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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그들은 해상 나그네

이숙의(아녜스, 부산교구 해양사목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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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오후는 부두로 나가는 날이다. 대여섯 명으로 구성된 배 방문팀이 배에 올라가 외국선원들을 만난다.
 선원들은 오랜 항해 끝에 항구에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휴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단조로운 승선생활에서 벗어나려고 선원센터나 쇼핑거리를 누비며 여가를 즐겼다. 그러나 요즘은 하역작업 속도가 빨라지고, 9ㆍ11 테러 이후 보안이 강화돼 육지에 발을 디딜 시간이 짧아졌다. 이국적 풍광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이런 변화로 직접 그들을 찾아가는 배 방문은 외국선원사목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지난주에는 컨테이너선을 방문했다. 갱웨이(선내로 들어가는 출입구)에 올라가는 순간,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해상 나그네들의 그을린 얼굴과 마주쳤다. 보통 오후 2~3시는 휴식시간이므로 메스룸(선원식당)으로 가서 그들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설이 좋은 상선이어서 그런지 식당이나 선실은 깔끔했다. 그 배에는 필리핀 선원들이 타고 있었는데 고국의 가족과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그 중 마닐라에서 온 한 젊은 선원은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새신랑이라 집에 두고 온 신부를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이별과 그리움, 그리고 짧은 재회가 반복되는 선원생활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리가 가져간 잡지와 신문을 전하니 그 자리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따라잡으려는 듯 읽기에 열중했다. 식당 냉장고에서 꺼내준 시원한 음료로 목을 축이며 언제 출항하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밤 10시"라고 했다. 혹시 부산시내를 구경했냐고 물었더니 "꼭 보고 싶었는데 그냥 떠나게 돼 아쉽다"고 했다.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차량을 지원해 준다면 지금이라도 잠시 나가 시내 구경을 할 수 있지만 그날 우리 차량 사정이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 다음을 기약했다.
 선원들은 국적과 문화가 다른 동료 선원들과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안전에 신경을 쓰느라 늘 긴장하고 있다. 특히 1년 가까이 승선생활을 한 뒤 휴가차 집에 돌아가면 지상생활에 적응하기까지 우울증 같은 정신적 고충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거친 풍랑을 헤치며 이 항구 저 항구로 옮겨다니는 그들은 나그네다. 잠시나마 쉴 수 있도록 돕고, 신앙생활 편의를 봐주는 일은 나그네에게 마땅히 제공해야 할 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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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7-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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