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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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목일기] 얼마나 외롭게 기도했을까

이숙의(아녜스, 부산교구 해양사목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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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누워있는 바오로씨를 만나러 갔다.
 외항선을 타는 바오로 형제는 열대지방에서 고생을 한다더니 어느날 갑자기 주방에서 쓰러졌다. 일본으로 급히 옮겨져 홀로 치료받고 있는 형제를 부인이 가서 데리고 왔는데, 뇌손상으로 정신연령이 3~4살 어린아이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매가 멀뚱멀뚱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형제에게 말했다.
 "해양사목에서 왔어요. 당신 보려고. 신부님이 기도해 주신데요."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마냥 천진난만한 표정이던 바오로 형제는 신부님이 머리에 손을 얹자 다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일본 병원에 있을 때 어찌 될지 몰라 제가 대세(代洗)를 주었어예. 세례명을 바오로라고 했어예."
 쓰러진 남편을 씩씩하게 간호하고, 선박회사측과 보험문제를 처리해가는 부인 모습에서 해양가족의 강인함을 보았다.
 장기승선과 휴가를 반복하는 선원들은 천주교를 믿고 싶어도 기회를 찾지 못해 뒤로 미루기 일쑤다. 본당 예비신자 교리나 견진성사 일정에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인들은 남편의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30년 이상 배를 탄 어느 형제는 해양사목에서 집중교리교육을 받고 드디어 영세에 `성공`하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부인도 기뻐서 함께 울었다.
 부인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남편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외로운 기도를 바쳤을까? 세례식에 참석한 우리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안다.
 언젠가 부산항에 정박한 배에서 미사요청이 들어왔다. 외국 선원들, 선원 가족들, 봉사자들은 정박시간이 고작 대여섯 시간뿐인 배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파도와 해풍을 헤치고 항구에 도착한 선원들은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렀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국적 선원들은 자신들의 어머니를 대하듯 선원 가족과 봉사자들을 맞이했다. 선원 가족들이 말했다.
 "저 사람들 보니까 꼭 우리 남편 보는 것 같네." "그이도 지금 어느 항구에서 저러고 있겠지."
 그 짧은 정박시간을 쪼개 하느님을 찬미한 선장과 선원들은 미사가 끝나자 서둘러 출항준비에 들어갔다. 그들은 땅도 밟아보지 못하고 그날 밤 다른 항구를 향해 떠났다.
 선원들과 만나다보면 인간은 영원한 항구에 이를 때까지 항해자이고 나그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겠다는 결심을 또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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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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