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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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버리며 떠나는 여행

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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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식년을 맞아 2004년 9월부터 1년 동안 25개 나라를 여행했다. 8개월 동안의 아프리카 여행은 한 곳에 머물면서 그 곳에서 인접 국가들을 다녀오는 여행이었지만 2개월 이상의 유럽여행은 일정한 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 없이 떠나는 순례여행, 말 그대로 배낭여행이었다.
 장기간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며 짐을 끌고 다녀야 하기에 짐을 작게 만들어야 했다. 짐을 줄이려 최소한의 옷가지, 세면도구 등 필요한 것만 골랐는데도 배낭에 들어가지 않았다. 짐을 더 줄였다. 그래도 너무 많았다. 짐을 한 번 더 줄였다. 그제야 배낭 안에 다 들어갔다. 겨우 요것을 가지고 어떻게 1년을 견딜지 걱정이 됐다.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그 많은 것들을 빼놓고 이렇게 작은 배낭 하나만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까 근심이 생겼다.
 그러나 그 배낭 하나로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바꿔 입던 양말과 속옷은 이틀에 한 번씩 갈아입었고, 2~3일에 한 번씩 갈아입던 것 옷은 4~5일씩 입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적응이 되니까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간다고 했던가? 이가 없는데도 불편하기는커녕 잇몸 그 이상의 다른 것이 생기는 것 같았다. 없으면 못 살 것 같았지만 없어도 살아갈 수 있었다.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쇼핑이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대체로 가방이 커진다. 1~2주일 여행자도 쇼핑백이 작지 않다. 그러나 나는 1년이나 여행을 했지만 쇼핑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들고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가보는 나라,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평생 기념할 만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의 특이한 것들을 소유하고 싶기도 했지만 유혹을 물리치고 끝내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것이 정말로 나를 편하고 자유롭게 했다. 여행을 하면서 기념품도 선물도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 것인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청년들이나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배낭여행을 나는 50대 후반 나이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기간도 짧지 않은 1년 동안, 동반자도 없이 혼자서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주시고 가이드가 되어주신 그분이 옆에 계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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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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