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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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낙엽이 가르쳐준 신비

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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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앞에 있는 느티나무가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나뭇잎이 그리도 싱싱하기에 천년만년 푸르를 줄 알았는데 가을이 되자 누렇게 병들고 퇴색되어 한 잎 두 잎 떨어지더니 어제는 마지막 잎사귀까지 떨어져 나갔다.
 나는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보았다. 가을의 나뭇잎들이 우리 눈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싱싱하던 잎이 병들고 퇴색되어서 죽은 시체일 뿐이다.
 가을이 되자 여러 나뭇잎들 중 약한 나뭇잎들이 먼저 노랗게 병들어 떨어지고 그 뒤를 이어 많은 나뭇잎들이 죽어서 우수수 떨어졌다. 그런데 그 많은 잎사귀들이 가지에서 떨어져 나간 후에도 몇몇 잎새들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기에 며칠이나 더 붙어있나 관찰해봤다. 그랬더니 그 나뭇잎들 역시 한 달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맥없이 떨어져 내렸고 이제는 달랑달랑하던 마지막 잎사귀마저 붙어있지 못했다.
 나는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봄에 푸르렀던 나뭇잎들이 가을이 되면 병들고 시들어 떨어지듯이 젊고 건강하던 인생도 때가 되면 늙고 병들어 죽게 된다. 병들고 시들은 나뭇잎 중에 어떤 것은 먼저 떨어지고 어떤 것은 나중에 떨어지지만 그 기간 차이가 기껏해야 20일, 30일밖에 안 되고 사람도 먼저 죽고 나중에 죽는 기간 차이가 기껏해야 20년, 30년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00여 년을 가까이 사는 사람의 수명으로 볼 때, 나뭇잎이 먼저 떨어지고 나중에 떨어지는 20~30일의 기간 차이는 아주 짧은 것이고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을 살 신앙인에게 먼저 죽고 나중에 죽는 20년, 30년의 기간 차이는 아주 짧은 것이고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낙엽이 하루 이틀 먼저 떨어지나 나중에 떨어지나 별 차이 없듯이 인간이 20~30년 먼저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별 차이가 없거늘, 하루라도 더 살려고, 하루라도 나중에 죽으려고 무리하게 발버둥치는 것은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사람이 먼저 죽는 것은 먼저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이고, 늦게 죽는 것은 늦게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라도 늦게 죽으려고 하는 것은 하루라도 늦게 천국에 가겠다는 뜻이요, 천국에 가는 것을 고대하기는커녕 미루고 지연시키는 것임이 틀림없다.
 죽음과 영원한 생명의 신비를 깨닫는데 도움을 준 느티나무의 낙엽들이 오늘도 사제관 앞마당에서 바람에 흩날리는구나.

 ※다음 필자는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산재사목실에서 활동하는 정점순(프라도 수녀회) 수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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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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