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사목일기]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김지형 신부(서울대교구 일반병원사목부 강북삼성병원, 제일병원 원목)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지난해 성탄절 무렵의 일입니다. 병실 방문을 하다 한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신자는 아니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강원도에 사는데 `심마니`라고 했습니다.
 태어나서 심마니를 만나본 게 처음이었던 저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여쭤보다 곧 친해졌습니다. 형제님은 사업을 하다 실패해 어려움을 겪고 산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씀과 가족 관계 등을 얘기해 주셨고, 제게 궁금한 것도 물어보셨습니다.
 형제님은 "아니 신부님은 이렇게 잘 생기셨는데 왜 혼자 사세요?"라며 다소 엉뚱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질문을 했고, 저는 "퇴원하시면 꼭 산삼 캐서 저도 한 번 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형제님은 간이 나빠져 복수가 차오르는 상황이라 병실을 찾아갈 때마다 배를 어루만지며 대화와 기도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때는 병원사목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형제님의 병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알지 못했지만 상당히 위중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 저는 병원사목을 하면서 맞는 첫 성탄대축일을 준비하느라 매우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환우들과 전체 직원들께 나눠줄 성탄선물과 카드 등을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병실 방문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병실 복도에서 우연히 그 심마니 형제님과 마주쳤습다. 그동안 성탄 준비를 하느라 못 찾아가 뵈어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곧 성탄 선물 들고 찾아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사하고 인사 드렸습니다.
 며칠 뒤 성탄 선물을 들고 심마니 형제님 병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형제님이 안 계신 것입니다. `혹시 병실을 옮기셨나?`하는 생각이 들어 간호사실에 물어보니 바로 전날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심마니 형제님을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은 여러 번 들었지만 이런저런 바쁘다는 핑계로 병실 방문을 미룬 사이에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나셨던 것입니다.
 저는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머릿 속에 떠오르는 환우가 있으면 다시는 미루지 않고 방문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직까지 그 다짐을 지키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형제님, 하늘나라에서 산삼 캐서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가서 꼭 먹을 테니까요."
 그런데 제가 하늘나라에 가야 산삼을 먹을 수 있겠죠? 갈 수 있으려나? 여러분도 사랑하는 것을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사랑하세요.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7-12-0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2

시편 139장 23절
하느님, 저를 살펴보시어 제 마음을 알아주소서. 저를 꿰뚫어 보시어 제 생각을 알아주소서.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