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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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31) "저희의 잘못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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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산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부딪힘 때문에 서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혼자되신 엄마가 제대로 챙겨 드시지 않아 체중도 많이 줄고 허약해지시는 것을 보고 우리 집에서 모시고 살며 식사라도 제대로 챙겨 드리고 살갑게 대화도 주고받으며 남은 삶을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 넷을 키우며 바깥일도 많이 하는 딸의 일손을 거들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살기를 찬성하셨다.

그러나 함께 사는 것이 생각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는 당신이 이 집의 주부라고 생각하며 모든 일을 다 하려 하셨지만 나는 굽은 허리로 설거지를 하는 모습만 봐도 속이 상했다. “엄마, 힘든데 설거지를 왜 해요?”하며 짜증 섞인 어투로 말하면 엄마는 “왜 소리를 지르느냐.”며 화를 내셨다. “밥을 안 먹으면 빨리 죽겠지? 내가 당장 이 집을 나가겠다.”며 속을 뒤집어 놓으셨다. 나는 내 진심을 몰라주는 엄마가 원망스럽고 서운했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못마땅한 게 그리 많은지 나를 붙잡고 아이들 험담을 늘어놓으시면 나는 속이 상해서 좋은 얼굴로 대화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엄마만 보면 짜증이 났고 다정한 눈빛은커녕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한 달 전 또 집을 나가겠다며 화를 내는 엄마에게 그럼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나도 할 만큼 했고 더 이상 내가 다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결정하고 엄마가 살 집을 알아보는데 내 마음에서 자꾸만 올라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너도 잘한 건 없지 않니? 엄마 마음을 좀 더 읽어드렸으면 좋지 않았을까? 네 마음이 그렇게 차가우니 엄마도 그 마음을 느끼셨을 거야.’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그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혹스러웠다. 내가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걸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그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계속 핑계를 댔다. ‘엄마가 나에게 너무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딸에게 어떻게 그래?’ 그러나 그 말은 그대로 내게 돌아왔다. ‘네가 엄마에게 너무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엄마에게 어떻게 그래?’

엄마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청해야 하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용서를 청하는 대신 엄마에게 나가지 마시고 우리랑 다시 잘살아 보자고 말씀드렸다. 엄마도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내 말을 기쁘게 받아 주셨다. 엄마와의 삶이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느낌이었다. 서로 좀 더 존중하고 정성을 들이며 살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용서를 청하면서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렇게까진 안했을 거야, 아무튼 미안해, 그때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오죽했으면 내가 그랬겠어?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너도 잘한 건 없지 않아?’ 이런 사과는 상대에게 가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

내 잘못을 솔직히 고백할 때 상대도 내 진심을 알고 용서해줄 수 있다. 내가 나를 용서하려면 내 허물, 내 빈 곳을 아무 조건 없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용서할 수 있고 용서를 청할 수 있다.

부부관계도 다르지 않다. 특히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늘 잘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늘 참아주는 구도로 고정되어 있을 때, 늘 참아주던 사람이 자신의 잘못 또는 더 잘하지 못했던 일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어쩌면 은총의 순간일지 모른다. 나를 용서하고 상대를 용서하고 서로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은총의 때이다. 그때서야 하느님 앞에 가서 나를 용서해 달라 청할 수 있을 것이다.

“저희의 잘못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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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8-0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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