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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53) 새 신부와 판공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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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된 ‘2020년 부활 판공’을 ‘성모승천대축일’ 전까지 실시하라는 교구 결정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부활 판공성사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신자들 간의 이동이 겹치지 않는 장소를 선정했습니다. 이어서 판공성사 일정을 잡는데, 의외로 손님 신부님을 모시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실, 주임 신부인 나와 보좌 신부가 본당 교우분들의 고해성사를 주면 되겠다고 편하게 생각했지만, 본당 신자들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손님 신부님이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본당 신부님들과 교우 분들이 일상을 잘 지내는 것과 고해성사를 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암튼 판공성사 일정 중 마지막 날 평일 저녁에, 손님 신부님 두 분을 모시기로 결정했습니다. 무더운 때에 갑작스럽게 손님 신부님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보좌 신부님의 인맥과 노력으로 두 분의 신부님 물색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분 중에 한 분 신부님께선 지난 해 12월에 사제품을 받았고, 해외 선교를 나갈 준비를 하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 해 12월 사제 서품이라…. 그러면 서품을 받은 지 만 1년도 되지 않는 새 신부님이네. 음, 판공성사를 잘 줄 수는 있을까!’

아니다 다를까, 판공성사 주러 온 날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데, 그 신부님 말로는 ‘고해성사는 준 적은 있지만, 판공성사 경험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신부님에게 겉으로는 편안하게 성사주시면 된다고는 말은 했지만, 내심 신경이 쓰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신자들 모두가 영적으로 힘든 때, 모처럼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 되게끔 신경을 쓰려고 했지만, 고해 신부님이 ‘새 신부님’이라는 생각에… 미심쩍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윽고 판공성사가 시작됐고, 손님 신부님을 안 불렀으면 어찌됐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교우 분들이 고해성사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보고 돌아가는 신자분들은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나 또한 고해성사를 보고 가시는 신자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은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내 마음 속에서 어떤 울림이 밀려 왔습니다. ‘석진아, 너는 언제 고해성사를 볼 거야?’ 이에 나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그 신부님에게 고해성사 보기를 결심한 후, 판공성사를 마칠 즈음, 새 신부님이 계신 고해소에 들어가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도 고해성사를 볼게요.”

그러자 그 신부님께서 당황한 듯 손 사레를 치자, 나는 막무가내로 성호를 그어버렸습니다.

“나의 범한 죄를 전능하신 하느님과 신부님께 고백합니다 … 이러쿵 … 저러쿵 …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통회하오니 사하여 주소서.”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해 신부님이 내게 ‘지금 어려운 시기에 신자들을 위해 힘과 용기를 주는 사제가 되기를 바란다’는 훈화 말씀을 해 주셨는데, 마음이 어찌나 따스해지던지요. 내가 그 신부님을 ‘새 신부’라는 딱지를 붙여서 그렇지, 그 신부님은 판공성사 주시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좋았다고나 할까!

살면서 나도 모르게, 서품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신부님께 ‘새 신부’, ‘젊은 신부’, ‘어린 신부’ 등의 말을 쓸 때가 있었고, 은연중에 그 신부님을 ‘어린 사람’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료 신부님을 ‘어린 사람’ 취급하면, 그 신부님은 결코 ‘형제 신부’, ‘동료 신부’로 생각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날, 그 신부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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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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