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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53) 그리스도인들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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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7일,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가 삼성물산 소속 크레인과 부딪치면서 원유 1만2000여 리터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시커먼 원유가 태안 지역 해안을 삼켜 버렸고 일대 생태계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박사 과정 학생이었던 나는 사고로 인한 지역민들의 피해를 조사하느라 태안 지역을 자주 찾았었다. 삶의 기반이 파괴된 지역민들의 충격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고, 시커먼 기름이 덮인 바닷가는 회생이 불가능해 보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짧게나마 자원봉사에 참여하였는데, 바위 구석구석에 낀 기름때는 닦아도 닦아도 쉽게 제거되지 않았다. 이 기름을 언제 다 없앨 수 있을까, 이젠 끝난 것이 아닐까, 너무 막막하고 속이 상했다.

그러다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게 되었다. 나와 같이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서 달려온 사람들. 그들도 각자 바위 하나씩을 맡아서 열심히 기름을 닦고 있었다. 그렇게 2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태안을 찾았고, 태안 지역은 조금씩 회복돼 갔다.

그때 나는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에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회복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절망감이 압도하는 상황에서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일단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마음.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한 마음이자 하느님 당신이 세상을 관상(觀想)하시면서 느끼시는 바로 그 마음 같았다. 그리고 작지만 절실한 그 마음들이 모이게 될 때 세상은 조금씩 변화되어 갈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됐다.

깨어진 세상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 때문에 세상에 오신 하느님. 세상을 변화시킬 가능성이나 성공 확률을 따지셨다면, 힘과 능력, 조직과 인력을 가지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오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힘없고 낮은 한 명의 인간의 모습으로, 그러나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하고 연민했던, 하느님 사랑을 전하려는 열정이 가득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리고 대중으로서가 아니라 사람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만나시면서 위로하고 치유하고 회심하도록 이끄셨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회심하고 변하게 된 한 명, 그 한 명의 작은 회심과 변화, 구원을 예수님께서는 소중히 여기셨다. 그리고 그렇게 한 명에서 시작된 변화와 구원이 공동체를 통해 확대되어 세상 속에 퍼져 나가기를 바라셨다.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은 여전히 전 세계를 압도하고 있다. 아울러 기후 위기는 성큼 다가와 임계점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다. 계속 이렇게 간다면 과연 세상이 지속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대안은 있을까, 변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과 두려움, 절망과 막막함이 올라온다.

그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질문해 본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가지셨던 사랑과 연민의 마음에 깊게 머물러야 할 것 같다. 현실적인 두려움과 막막함 이전에 그분께서 이 세상에 대해 깊은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두려워하는 마리아에게 예수님 잉태 소식을 전하러 온 천사는 말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이 말씀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말씀, 네가 다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어둠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께서 함께하신다고, 도와 가실 거라고 하시는 것 같다. 다만, 당신께서 세상 속에서 일해 가실 수 있도록 네가 함께했으면 한다고, 당신과 동반하자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 안에서 그분의 사랑과 연민에 감사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묵묵히 해 가는 것, 그리고 그런 길을 가고 있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 가는 것, 거기에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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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1-1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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