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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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68) 불을 때다, 나를 태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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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고 있는 공소에서는 겨울철 난방을 위해 화목보일러, 즉 나무를 연료로 보일러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벌목하는 곳에 비용을 지불하면 크고 굵은 나무를 배달해 줍니다. 그러면 그 나무를 잘 말린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보일러 작동의 연료로 씁니다. 평소 나무를 자르거나 보일러를 가동하는 일은 형제들이 합니다. 공구나 연장을 다루는데 소질이 없는 나는 그저 실내 청소 당번만 하고요. 그러다 보니 나무 때는 일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형제들은 화목보일러에 불을 때기 위해, 시간이 있을 때 마당에서 전기톱으로 크고 굵은 나무를 적당한 형태로 잘랐고, 자른 나무를 화목보일러 옆에 차곡차곡 쌓아 놓습니다. 때로 아주 굵은 나무일 경우 도끼로 패곤 했습니다. 그리곤 낮 시간을 제외하고 저녁과 새벽 시간을 이용해서 크고 굵은 나무를 보일러 화로 속에 요령 있게 집어넣어 불을 피웠습니다.

며칠 전 서품을 앞둔 어느 부제님이 1박2일 일정으로 공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방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다가 잠시 시간을 내서 공소 마당을 함께 산책하는데 부제님이 문득,

“강 신부님, 전기톱 어디 있어요?”

“왜?”

“나무 좀 잘라 주려고요.”

“할 줄 알아?”

“그럼요. 저희 어머님 집에서도 화목 보일러로 불을 때세요. 그래서 휴가 가면 제가 나무를 잘라 드리고 와요. 그리고 오늘 날씨가 좀 추운데 조금 일찍 보일러를 때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 그러자.”

창고에서 전기톱을 찾아 부제님에게 주자, 부제님은 원래 벌목하는 분인가 싶을 정도로 나무를 능숙하게 잘랐습니다. 나는 잘린 나무들 주변의 마른 껍질 등을 주워서 한 곳에 모아 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부제님은,

“주변에 있는 잔가지, 마른 나무 껍질 등을 다 모아 놓으면 무척 유용하게 쓰일 거예요.”

“그래?”

“그럼요. 강 신부님은 화목보일러에 굵은 나무들만 잘 넣으면 그게 타서 보일러를 돌린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화목보일러 안에 굵은 나무들을 넣기 전에는 관솔, 즉 소나무 가지들이나 혹은 잔가지들, 나무껍질 등을 밑바닥에 깔아 놓아야만 해요. 그리고 굵은 나무를 넣은 후 빈 공간 사이사이에 작은 나무들을 넣어야 하고요. 그래야 잔가지에 불이 붙으면, 그것의 힘을 받아 작은 나무들에 불이 붙는 것이고요. 결국 작은 나무들이 잘 타면서 굵은 나무가 타게 만들어 보일러의 뜨거운 온도를 유지하고, 정상적이고 안정감 있게 보일러가 작동되는 거예요. 제가 굵은 나무를 자르는 것만큼이나, 잔가지나 혹은 나무껍질, 그리고 작은 나무들을 한 군데 잘 모아 두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란 거죠.”

“그래? 그럼 나도 화목보일러 때는데 일조를 하는 거네, 하하하.”

소소한 일상에서 세상의 이치를 묵상하게 됩니다. 거대한 조직이라는 큰 나무를 움직이는 동력은 구성원인 우리 각자가 자리 자리에서 관솔이나 잔가지 역할을 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본당이나 공동체 역시, 그곳 신자들과 성직자·수도자들이 자신을 태울 때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문득, 차가워진 이 세상을 잘 데우기 위해 교회라는 큰 나무가 잘 타도록 우리 모두가 관솔이나 잔가지가 되어 자신을 태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을 잘 태울 때 교회 공동체라는 굵은 나무가 잘 타서 세상을 데우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불을 땝니다. 그 불을 잘 피우기 위해 나를 버리고, 나를 비워 결국 나를 태우는 삶을 살아갈 결심도 해 봅니다. 나를 태울…, 결심을 해 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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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1-1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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