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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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44) 걷기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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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어머니와 산양 형제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길을 떠난 지 16일 만에 천둥 번개를 몰고 청와대에 닿았다.

뜨거운 가슴과 수많은 발걸음으로 길은 생명의 길이 됐고 우리들이 꿈꾸는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에 조금 다가선 듯하다. 천둥 번개와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하늘을 우러러 두 팔을 벌리고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는 성경 말씀을 떠올렸다.

설악산은 지역민들의 삶을 품었고 대를 이어 살아갈 수 있도록 베풀었으나 탐욕은 갈수록 커졌고 드디어 삶의 바탕을 이루는 설악산의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덤벼들었다. 대박을 꿈꾸며 설악산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깃들어 사는 생명의 존재는 무시됐다. 더불어 아름다워야 할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세상으로 바뀌었고 스스로 무덤을 파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도록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막아내려는 싸움이 이어졌고 막바지에 다다라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설악에서 청와대까지 200㎞에 이르는 길을 뭇 생명을 위한 순례길로 여기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여름의 땡볕과 장대비가 쏟아지는 길을 따라가며 이 땅의 아픔 속으로 들어갔다. 곳곳에서 무너지는 자연의 상처와 아픔은 권력과 자본의 결탁으로 이 땅이 어떻게 짓밟히고 있는지를 드러냈고 온몸으로 스며드는 아픔에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어려웠다.

뚝뚝 잘려진 산줄기와 허옇게 사라지는 숲, 도시의 경관을 해치며 무질서하게 바벨탑처럼 들어서는 아파트, 오직 빠름을 위해 뻗어 나가는 고속도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견디기 힘들었다. 인도가 없는 차도는 자동차들의 폭력적인 질주와 소음으로 걷는 것조차 생명의 위협을 끊임없이 느껴야 했다. 비닐하우스에서 붕어빵을 찍듯이 키워지고 있는 오이와 호박을 보며 생명조차 박제화돼 가는 섬뜩함은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걷기를 마치고 누우면 몸은 땅속으로 가라앉아 잠조차 깊이 들지 못했다. 이 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곳인지 되묻곤 했다. 구간마다 모여드는 순례자들로 다시 몸을 일으켜 꿈꾸는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며 걷는 길은 서로 기대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이 세상을 생명과 평화의 세상으로 묶어내는 커다란 끈이 됐다.

순례길은 멈춰서도 안 되고 멈출 수도 없는 길이 됐다. 모든 것으로부터 무감각해져 가는 삶을 돌아보고 모든 것에 무관심했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분노하고 저항하는 삶으로 만들었다. 분노하고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꿈꾸는 세상은 얻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걸은 순례길이었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취소될 때까지 순례길은 이어질 것이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
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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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8-1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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