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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228)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

그저 달리는 것이 행복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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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는 전통치마와 샌들을 신고 울트라 마라톤에서 100㎞의 험난한 산악 코스를 12시간 44분의 기록으로 우승한 멕시코 선수 로레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하늘이 열리듯 수많은 협곡과 봉우리, 우뚝 솟은 산에 깎아지른 절벽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장엄한 산악지대를 담은 영상으로 시작한다. 자연의 위대한 신비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경이로운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착각에 빠질 무렵 레이스 달린 치마를 입고 산기슭을 달리는 로레나의 모습이 등장한다. 가슴에 번호판은 붙이고 있지만, 평상복을 입은 그녀의 차림새는 낯설어 오히려 눈에 띈다. 그녀의 표정 역시 시종일관 변화 없이 온화하고, 달리는 자세도 구간별 힘든 고비가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는 평정 그 자체이다.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한 마라토너의 다큐멘터리라면 일반적으로 극기훈련이나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방법 등에 대해 기대를 하는데 로레나의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녀가 살고 있는 멕시코의 치와와는 타라우마라 산악지대의 토착마을로 여성들이 동물을 돌봐야 하는 풍습 때문에 로레나는 학교도 다니지 않아 친구도 없고 가까이 사는 이웃도 없다. 그녀는 대자연과 넓은 고원에서 방목하는 동물들을 돌보는 것이 일이고, 생필품을 사러 갈 때도 3~4시간은 걸어야 해서 그녀에게 걷고 달리는 것은 일상이다. 그녀의 가족은 평소에 부엉이 먹이를 주러 산 주변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밤에는 반딧불이와 함께 지내며 자연이 주는 빛과 소리를 친구삼아 대화하며 살고 있다.

로레나는 자기관리를 잘한 강인한 인간이기보다, 자연에서 얻은 지혜와 달리기가 삶 자체이고 즐거움이다. 우승을 할 때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 기뻤다고 수줍게 웃으며 선물 받은 러닝화는 신지 않을 것 같다는 그녀는 ‘지금과 같이 살고 유지하면 된다’는 신념을 보인다. 그 결과는 방안에 가득 걸려있는 수많은 우승 메달이 검증해 준다. 그녀가 자란 환경이 마라토너의 자질을 키워 오래 달려도 일정하게 호흡해 걷는 것 같아 보이지만, 촬영하는 카메라맨이 뒤따라가다 놓치는 장면을 보며 로레나의 속도를 실감 나게 한다. 말수가 적고 과묵한 로레나를 사슴을 닮았다고 표현하는 아버지도 울트라 마라톤에서 세 번이나 우승한 경력이 있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둘러싼 환경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로레나와 가족의 ‘달리는 능력’은 자연과 함께 살아서 얻은 자연이 주는 선물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스포츠는 기록을 경신하고 신기록을 수립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데 로레나는 항상 여유롭고 평화롭다. 달리는 순간이 행복하다며 최선을 다하는 정서적 안정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하며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장 뛰어난 장관에서부터 가장 작은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경탄과 경외의 끊임없는 원천입니다”(회칙「찬미받으소서」 85항)를 묵상해 본다.



넷플릭스 공개
 


이경숙 비비안나(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장, 가톨릭영화인협회 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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