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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내 소원도 통일」 출간한 하 안토니오 몬시뇰

“찰지고 단단한 신앙 끈기 모아 통일 이뤘으면”/ 북한 포로 신부와 만남 계기로 입국/ 한국 근대사의 역동적 시기 담아/ ‘푸른군대’ 국내 보급시킨 장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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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 우암2동 124번지에 54년째 살면서 평생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이 있다.

1922년 독일 베르팅겐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유고슬라비아에서 포로생활을 하며 전쟁의 참상을 체험한, 그리고 1958년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한국을 찾기 위해 비료선에 몸을 던진 부산교구 하 안토니오 몬시뇰이 바로 그다.

하 몬시뇰이 발간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내 소원도 통일」(하 안토니오 몬시뇰/150쪽/6000원/아베마리아출판사)에는 선교사이자 평화의 전도사로 한국 근대사의 역동적인 시기를 살아온 생동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신학생 시절 독일에서 사제생활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병으로 서품이 연기되고 본당에서 지내면서 북한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첫 만남은 하 몬시뇰 평생의 사제생활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 신부가 매우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침 부산교구가 막 설립되던 시기여서 최재선 주교님의 초청을 받고 일본 화물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2개월 동안의 항해는 크나큰 고역이었다. 배를 갈아타며 한국에 도착한 것은 1958년 7월 5일. 비료선에서 내리며 그는 ‘나는 한국을 위해 비료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하 몬시뇰은 한국교회에 푸른군대를 보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1964년 8월 푸른군대의 한국 도입 이후 현재까지 전국 각 교구 16만 명이 활동하고 있다.

평화통일을 위한 임진각 미사도 하 몬시뇰의 주도로 1974년 5월 19일 처음 이뤄졌다. 이후 매년 푸른군대 주최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끊어진 다리,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길을 보면서 너무나도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과 조국의 분단을 경험한 그였기에 통일을 위한 열망은 그 어떤 한국인보다 컸다.

하 몬시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통일을 위해 모두가 염원하고 함께 기도한다면 분명히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대의 젊은이들이 재미만을 추구하는 태도가 매우 안타깝다”면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 이기주의와 문란한 성문화를 바로 잡기 위한 참다운 반성이 필요한 시기”라고 역설했다.

“한국의 신자들을 만날수록 한국의 신앙은 떡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빵은 내려치면 부서져 버리지만, 떡은 내리칠수록 더욱 찰지고 단단해 집니다. 이같이 끈기있는 우리의 신앙으로 마음 모아 통일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 고(故) 노기남 대주교가 스럼스키 신부와 여러 장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 푸른군대의 제1호 회원으로 서약하고 있다.
 
이도경 기자 (revolej@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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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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