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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30) 김복동 (My name is KIM Bok-dong, 2019)

진정한 용서 위해 외친 할머니의 고귀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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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김복동’ 포스터.



한 인간의 품위는 어디서 오는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오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이분들이 침략으로 끌려가 이용을 당했지만,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는 영상을 접한 적이 있다.

교황님처럼 내게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안에서 인간의 품위가 먼저 보였다. 좋은 조건의 환경과 교육들이 품격 있는 인간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세상을 돌아보면 고개를 갸웃할 때가 많다. 인생에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의 답이 있는 것 같다. 척박하고 겪지 말아야 하는 고통을 겪어낸 이들 안에서 참으로 멋진, 인간다운 품위를 지닌 모습을 접하게 될 때 고맙고 더 감동스럽다.

영화 ‘김복동’은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복동 할머니의 다큐멘터리이다. 그녀는 14살에 공장으로 돈 벌러 가는 줄 알고 갔다가 일본군의 침략 경로인 중국과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 성 노예로 끌려다니다가 22살에 귀향한다. 기억하기도 싫을 위안부 시절 이야기가 단 몇 줄의 말로 끝나고 자신이 바로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밝히면서 산 1992년 3월부터 2019년 1월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입니다”. 당당하고 꼿꼿한 자태, 단호한 어투는 고생했음을 토로하는 슬픈 경험의 노인이 아니다. 인간 안에는 비인간적인 고통마저 승화시킬 힘이 있음을 보게 한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임을 의식하고 나선 김복동 할머니. “일본 대사는 아베에게 전해라.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잘못했다고 사죄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시아를 제패(?)했던 위대한 선조들의 위업에 작은 흠도 남기고 싶지 않은 후손들의 갸륵함으로 보아야 할까? 있는 사실을 없었다고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우매함에 비해 그 험한 고생을 하고서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사죄만 하라는 할머니의 외침이 놀랍다. 용서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이에게 거저 주는 떡이 아니다. 인간이 우매하여 모르는 죄가 있지만, 천하가 아는 이 일은 사죄해야 한다. 그것이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자유를 준다.

영화는 어둡지 않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이들에겐 유머와 배려, 넉넉함이 있다. 자신의 고통에 함몰되지 않고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연대할 줄 안다.

김복동은 고통에서 일어선 소리, 인간의 품격이고 이 시대의 ‘일깨우는 이’였다.

미디어몽구로 잘 알려진 감독의 8년 노고가 고맙게 다가오고 한지민 배우의 담백한 해설이 영화 속으로 친근하게 다가서게 한다.


▲ 손옥경 수녀(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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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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