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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98) 굿바이

가볍게 풀어가는 인생의 무거운 숙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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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며 인생영화가 되었던 영화 ‘굿바이’가 다시 극장가를 찾았다. 이미 잘 알고 있던 영화임에도 새롭게 다가온다. 좋은 영화는 세월이 흘러도 감명과 더불어 통찰을 건넨다. 마음으로 읽는 돌멩이 편지처럼.

도쿄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다이고’가 악단의 해체로 무직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연령 제한 없음, 고수익 보장! 짧은 노동시간! 정규직!’이라는 파격 조건의 구인 광고에 이끌려 찾아간 그는 즉시 채용되지만 기쁨도 잠시, 구체적으로 알게 된 직업은 돌아가신 이를 염하는 납관사다. 당황하며 도망치려 하지만 단순치 않다. 조금은 태평하고 순수한 성품과 생계에 대한 책임감이 멈추어 서게 한 것이다. 직관적으로 사장은 다이고에게서 높은 자질을 보았다.

사장 이쿠에이의 지략으로 얼결에 주어진 직업, 아내에게도 이웃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투철한 직업 정신과 각별한 배려로 고인을 염하는 사장의 모습은 지켜보는 다이고의 눈을 틔운다.

다이고는 스미듯 자신의 직업에 대해 소신이 생겨나며 죽은 이에게 정중하고 섬세하게 다가선다. 이런 태도는 지켜보는 이나 유족에게 돌아가신 이를 잘 배웅하게 하고, 있는 그대로 화해하도록 돕는다.

그래서일까. 첼로를 켜던 나름 고귀한(?) 손길이 시신을 만지면서 갈등으로 닿았지만 바라보는 우리 눈은 그 일이 고귀하게 다가온다. 죽은 이를 정성으로 대하는 손길이 지극히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 뇌가 남과 나를 구별하지 못한다던데 나와 가족을 돕는 것처럼 친근하고 고맙다.

높은 산을 뒤로하고 넓은 들녘에 앉아 첼로를 켜는 다이고의 모습은 다양한 사연을 가진 고인을 돌보는 일과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모두 연주임을 느끼게 한다. 높다-낮다, 귀하다-천하다는 경계를 지우고 삶에서 주어지는 모든 일이 다 귀한 일임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는 남편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직업도 버리고 따라가는 지순한 아내의 모습도 보이고, 힘들어 그만두고 싶지만, 오랫동안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목욕탕을 닫지 못하는 정이 넘치는 아주머니도 보인다. 안타깝게도 가족을 사랑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그리워만 하다가 떠나가는 아비의 모습도 보인다.

죽음, 장례 도우미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시종일관 따스하고 유쾌하다.

새해에는 생로병사에서 ‘생’만을 강조하며 뒤로 돌려놓고 싶어 하는 ‘로병사’를 일상으로 바라보며 평온히 함께 사는 성숙함과 쓸데없는 잣대로 일상을 재는 무거움을 벗고 가볍게 걷는 경쾌함을 살고 싶다.



2020년 12월 31일 극장 재개봉

 

 

 

 

 
 

 


손옥경 수녀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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