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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그때 나 거기 함께 있었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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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4처에서는 더 간곡해진다. 베로니카, 그때 나 베로니카와 함께 있었다 해도 난 못했을 거고, 지금도 그렇다고. “저 젊은 여자가? 미쳤나!?” 겹겹 둘러싼 구경꾼들과, 창칼로 중무장한 로마병정의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 감히 저 대역죄인에게 수건을 바치다니? “저 미친X 좀 봐!” 군중들의 이런 욕설을 왜 예상 못했겠나. “이X이 죽고 싶어?” 창칼 병정들에게 머리채로 끌려나올 줄 왜 몰랐겠나만, 그녀는 해냈고, 난 못했을 거다. 아니 안했을 거고, 아직도 안하고 못할 거다. 평판에 귀 밝은 세상의 범생으로. “부모조상 얼굴에 먹칠 짓하면, 내손에 죽는다!”는 협박으로 커서, 하잘 것 없는 가문의 부속품이었으니. 백만 번 죽었다 깬다 해도 베로니카는 될 수 없는, 한계 안에서 주님을 섬긴다며, 이용만 해 왔어요.

또 이런 생각에 잠기다가 어느새 5처. 시골에서 올라온 날 웅성대는 인파 틈에서, 뭐야? 구경하려다가, “재수 없이” 끌려나와, 대신 지는 십자가의 키레네 시몬까지 왔다. 그는 자칫 사교로 매도될 수도 있는 위기의 예수교를, 다마스커스 도상의 주님 만남과, 해박한 구약지식과 열두 사도의 체험을 근거로, 논리적 신학적 보편적인 신약으로 체계화했던, 석학 바오로가, “내 어머니라고 편지 쓰며, 알렉산드로스와 루우포의 모친”을 각별히 부탁했던 그 여인의 남편이 바로 키레네 시몬, 그이일거라고. 그에게는 “재수 없던” 순간이, 그의 자자손손 무한대에게 최상의 축복 사건이요 무한영광을 얻는 순간이 될 줄이야. 사순 때마다 4복음서, 특히 요한복음과 루카복음은 꼭 읽었다. 두 분을 가장 좋아하니까. 나의 성경읽기는 어디의 몇 장 몇 절은 기억하려 않았다. 시험도 논문도 아니어서 즐겨 읽게 되니까. 알렉산드로스와 루우포의 어머니도 바오로 사도의 여러 서신 중 어디와의 연결을 찾으려 한적 없다.

명색이 학자로서 논문과 책을 쓰면서, 무수한 선행연구과 참고문헌의 출처들을 낱낱이 대차대조하는 인용 작업에 진저리쳤다. 성경학자가 아니니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겁게 읽어왔다. “와서 쉬라”고 하신 주님을 어렵게 섬기 다니?! 편하게, 주님 뜻보다 내 뜻 우선으로. 의식이 특히 싫은 성깔이라 코로나로 미사 못 드리게 되어 좋기도 했으니. 내 편한 시간에 성경과 매일미사를 읽고, 성당이 비었을수록 좋았고, 성체조배라는 미명으로 온갖 잡생각에 빠졌다가, 촛불봉헌 몇 개로 일괄처리(불경스럽게도)하고, 귀가 길에는 “너 위해 내 몸(목숨)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찬미가 알사탕처럼 입속을 굴러다녔다. 문득 이 구절이 왜 현재형인가? 2천년도 더 전에 순교하셨는데, 그 의문도 풀렸다. 부활이 없다는 사두가이들이 물었지. 아들 없이 죽은 7형제의 아내 되었던 한 여자가, 부활 때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모두 천사처럼 된다 하신 주님께서는, 하느님은 산 자의 하느님이지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하신 구절로서 해결되었다. 항상 현존하시니까 현재형이어야지.
 
글 _ 유안진 (시인, 글라라, 서울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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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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