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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기도를] 이관진(베드로) 전 한국평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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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평신도사도직 운동에 마중물 역할을 해온 이관진(베드로) 전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이 12월 25일 오전 2시16분 주님 품에 안겼다. 향년 88세. 고인의 장례미사는 12월 28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주례로 봉헌됐다. 장지는 수원교구 안성추모공원.

1927년 9월 17일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2년 경제통신사 기자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1972년 샤프전자의 전신인 한국샤프를 세우면서 한국교회와 인연의 끈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간 고인이 남모르게 행해온 나눔에 비해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다. 가까운 지인들도 모르게 30억 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아 후학들을 길러낸 일부터 군종교구가 뿌리내리도록 영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일 등은 한참 후에나 알려진 몇 가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사랑의 손길로 새 생명을 얻은 이들은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그의 도움으로 백혈병을 털고 일어나 성소의 길을 걷고 있는 사제에 수도자가 돼 기도와 희생으로 그 뜻에 동참하고 있는 이까지 모두가 고인의 사랑이 맺은 열매다.

1992년 제9대 한국평협 회장으로 선출된 후 걸어온 길은 고스란히 평신도사도직 운동의 전범이 됐다. 1994년 교회 차원의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새롭게 불붙기 시작했을 당시 평협 내에 처음으로 도농협력분과위원회를 만들어 피폐해진 농촌을 살리는 일에 앞장섰다. 또 임기 내내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내탓이오’ 운동을 비롯해 우리농산물먹기운동 우리상품쓰기운동 등 정신운동을 실천운동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은 평신도사도직의 피와 살이 됐다.

특히 고인은 군사목에 있어 듬직한 밑불 역할을 했다. 제5대 한국가톨릭군종후원회 회장(1987년 4월~2006년 12월)으로 20년 가까이 열악하기만 하던 군사목을 살찌우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북방선교를 담당할 사제 양성을 위해 김수환 추기경 등과 뜻을 모아 지난 2002년 설립한 ‘옹기장학회’는 한국교회 사목에 하나의 분수령이 되기도 했다.

일선에서 물러나서도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고인이 출연한 기본재산 50억 원을 바탕으로 지난 2007년 출범한 환주복지재단은 사랑 나눔을 나라밖 가난한 이들에게까지 끝 간 데 없이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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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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