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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훈(요한 세례자) 전 국무총리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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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훈(요한 세례자) 전(前) 국무총리가 5월 10일 오후 3시7분경 지병으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1922년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태어나 26세 때 김효수(엘리사벳)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성룡(이냐시오)씨, 효영(프란치스코)씨, 혜연씨 등 2남1녀를 뒀다. 성룡씨와 효영씨 두 아들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사위는 오정무(전 한국에너지연구소장) 박사로 오천석 전 문교부 장관의 아들이다.

장례절차는 대한적십자사 김성주 총재, 정원식 전 국무총리,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 사회장으로 진행되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특실이다. 5월 14일 오전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봉헌한 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영결식이 거행된다. 장지는 국가유공자 제3묘역이다.

고인은 1952년 미국 워싱턴D.C. 성 마태오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한인본당 초대 사목회 회장(1967~1970년)과 워싱턴D.C. 한인본당 초대 사목회 회장(1972~1975년)으로 봉사했다. 1985년부터 2년2개월 간 주 교황청 한국대사로 봉직했으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했을 때 국무총리로서 교황을 영접했다.

고인은 또 60여 년간 중림동 약현성당을 본당으로 신앙생활을 했으며 1998년 중림동 약현성당 화재 사고 이후 약현성당복원위원회 위원장으로 성당 복원을 도왔다. 한민족100년계획 천진암대성당건립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고인은 육군참모대학을 수료하고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3년 육군 제2사단 사단장을 비롯해 1960년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거쳐 1961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으며, 1980년 주 영국 대사관 대사,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1988년 제21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1991~1997년), 세종재단 이사장(1997년) 등을 역임했다.

특히 고인은 일제 시대와 광복, 제1공화국 출범부터 6·25 전쟁과 4·19, 5·16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두루 겪으며 우리 사회의 분열과 통합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대표적 사회원로다. 육군사관학교 교장(중장) 재직 중 5·16 쿠데타가 발생했으나 참여를 거부해 ‘반혁명 장성 1호’로 서대문교도소에 수감됐다. 1988년 12월 5일 제6공화국 2기 내각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이후 대한적십자사를 이끄는 총재로 7년간 역임한 뒤에도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국무총리 시절 그는 서울과 수원을 시작으로 제주도와 마라도까지 18곳을 순회하며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다. 엄격하고 공정한 법 적용을 통해 치안 질서 유지와 불법행위 근절에 앞장섰다. 1990년 서울에서 남북 최초의 총리회담을 개최해 남북화해라는 새 장을 열었다. 3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남북협력 증진의 실질적 기초를 닦았다.

장례위원장인 대한적십자사 김성주 총재는 “시대의 큰 스승이자 인생의 나침반이었던 고인과 헤어지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라며 “고인이 추구했던 가치와 이념이 미래 세대로 이어져 인도주의 정신이 빛을 발하고 사회통합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말했다.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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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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