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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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19) 국책사업과 그리스도인의 눈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자
국책사업이란 이름 앞에서 벗어던져진 교회정신
‘국가’ ‘충성’ 앞에서 하느님 뜻은 얼마나 떠올렸나
공동선과 공공질서 안에서의 사업시행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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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르며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고백하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공허한 고백이 적잖게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누가 주님의 참다운 자녀인지 구별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약성경에 능통하고 하늘의 징표에도 민감했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의 이론과 설득은 큰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들의 위장전술에 현혹되어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은 가까이서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경험하고 직접 그분을 대하면서도 정작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은 외면한 채 세상을 새롭게 하는 깨달음에는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로 대변되는 사이비들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인간 삶의 현장인 세상 안에서 끊임없이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나 혹세무민과 곡학아세가 횡행하는 때일수록 주님이 안겨주시는 십자가의 무게는 더 버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참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사이비들이 가장 격하게 부딪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경제활동의 장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제현상들 앞에서 그간 우리 시대가 던져주는 징표를 가볍게 흘려보지는 않았는지 뼈아픈 성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국가’ ‘민족’ ‘충성’이라는 담론들 앞에서 하느님의 뜻을 떠올려본 적이 얼마나 되는지 반성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멀리 되돌아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민족’이나 ‘국가’ ‘충’ 등을 절대적인 덕목으로 받아들이는데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습니다. 그래서 ‘국책사업’이란 이름을 내걸고 이뤄지는 일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규범과 척도를 멀리 던져둔 채 정부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의 정당성을 따지는 일을 불경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책사업’이란 이름 앞에서는 하느님과 교회정신, 사회적 가르침을 벗어던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지난 정부에서 이뤄진 4대강사업을 추진한 주체 중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들의 삶이나 선택에서 하느님을 어떤 자리에 모시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어떤 경우든, 공공의 개입은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경제적 주도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거스르지 않도록 개인의 활동을 대신하지 않아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354항)고 가르칩니다. 아무리 국책사업이라도 공동선과 공공질서가 정한 한계 안에서 모든 경우에 책임 있는 태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자유는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된 것이라도 도덕적으로 그릇된 것은 무엇이든 거부할 수 있는 능력’(「간추린 사회교리」 200항)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그리스도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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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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