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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36) 돈이라는 우상이 지배하는 세상

타인의 고통·슬픔에 무감각한 세태
‘무관심의 세계화’ 강력 비판하는 교황
가난·불평등에 맞서 싸울 것 촉구하며
형제들 고통에 둔감한 현실 일깨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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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하느님 나라의 영토는 어디까지일까요. 독실하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만 매몰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하느님 나라에까지 눈길을 주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도 ‘무관심의 세계화’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무감각한 세태는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Lampedusa) 섬에서 일어난 난민선 전복사고는 이같은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내전과 핍박을 피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조그만 배에 오른 아프리카 난민 500여 명 가운데 364명이 해변을 불과 800미터 앞두고 익사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폐선 직전 상태인 배가 고장났지만 지나가는 어느 선박도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해양구조대마저 출동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의 배타적 이민법인 피니보씨(Fini-Bossi)에 따라 처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이유였습니다. 난민들은 담요를 쌓아 불을 질러 다급한 처지를 알리며 해양구조대의 도움을 절박하게 호소했지만 오히려 배 전체로 불이 번지고 말았습니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도 지나가는 배들은 이들을 외면했습니다. 근처에 사는 어부 몇이 통통배를 몰고 달려와 필사적으로 구조작전을 펼친 덕분에 그나마 155명이라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이들은 오래 물에 떠 있지 못한 어린이나 여성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뒤늦게 나타난 해양구조대는 난민을 구출하는 어민들에게 피니보씨 이민법을 설명하면서 난민들에게서 떨어질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도착하게 되는 람페두사에는 1999년부터 아프리카 난민 20여만 명이 들어와 유럽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2만여 명은 섬에 있는 열악한 수용소에 발을 디뎌보지도 못한 채 바다에 빠져 죽어갔습니다.

질주하는 세계화는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부지불식간에 피폐하고 어둡기 그지없는 인간성 상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아득히 먼 나라 얘기처럼 무감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죽어간 이들도 하느님 안에 한 형제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람페두사 앞바다의 비극이 벌어진 날 가장 먼저 달려온 이는 정부 책임자나 관리도 아닌 프란치스코 교황이었습니다. 교황은 그해 7월에도 취임 후 첫 공식방문지로 람페두사에 있는 난민수용소를 찾아 미사를 봉헌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난민의 비극에 “심장이 가시로 찔리는 듯 고통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3월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공감과 연대의 능력입니다. 전용 방탄차가 아닌 버스를 타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그의 행동은 형제의 고통에 둔감해진, 아니 애써 눈감고 있는 우리의 무관심을 일깨우는 ‘죽비소리’가 되고 있습니다.

“돈이라는 우상을 중심에 놓는 경제 체제가 비극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무관심의 세계화’를 질타하며 가난과 불평등에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하고 있는 교황에게 세상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는 이유를 마음에 새겨야하겠습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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