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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26) 시대 징표 제대로 보고 올바른 몫 선택해야

한미 FTA로 우리 사회 양극화 더욱 심화될 것/ 농민·영세중소상인 등 힘든 상황 처할 위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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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화를 삼가고 드러내지 않는 것을 예(禮)이자 지혜로 여겼습니다. 한 번 노할 때마다 한 번 더 늙고 한 번 웃을 때마다 한 번씩 젊어진다(一怒一老 一笑一少)라고까지 하며 화는 속으로 삭이고 참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화내는 데는 더디셨던 분인 것 같습니다. 늘 사람들의 삶과 처지를 헤아려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기도 하고 기적을 행하시기도 하면서 당신을 청할 때 물리치지 않으시고 도움을 주시는 모습이 흡사 한없는 자애로움으로 자녀들을 대하는 아버지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도 간간이 분노를 드러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주로 겉과 속이 다른 바리사이 같은 사람이나 무능함을 보이는 제자들의 모습에 화를 내시곤 합니다. 성경을 통틀어 예수님께서 가장 큰 분노를 터트리시는 장면은 아마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져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을 때가 아닐까 합니다.(요한 2,13-16 참조)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십니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버리시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집이 장사꾼들의 흥정과 돈 바꾸는 소리로 가득해 난장판이 된 모습을 강도의 소굴에 비교하시면서 예수님은 무서운 분노를 터트리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찾아오신다면 어떻게 하실까 상상해볼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시대는 주님의 눈물을 보게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 몸이 바로 성전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세상 곳곳에서 성전이 허물어져가는 소리가 진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교회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물질주의와 세속화를 탓하는 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속화라는 흐름은 대체로 경제, 또는 경제적인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 많습니다.

우리 시대의 표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FTA(자유무역협정)를 둘러싼 사회현상들도 결국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자원이나 그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물은 유한한데 더 가지려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현 시대의 대세라고까지 일컬어지는 FTA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더 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데 있습니다. FTA가 아니더라도 인간다운 세상이 실종되었다고 말하는데, 이제는 먹고 살기 힘든 이들이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 가운데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아우성쳐대는 모습을 이미 세상 도처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맺은 FTA만 보더라도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이나 수입업자 등 몇몇은 혜택을 보겠지만 농민과 영세중소상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같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있는 이들은 더욱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 게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이로 인한 갈등 양상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아울러 철저한 대비 없이 한·미 FTA를 밀고 나갈 경우 미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이 심화돼 농업의 파괴는 물론이거니와 초국적 투기 자본에 의한 금융 장악과 국부 유출, 일자리 감소, 환경 파괴 등으로 인해 우리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주님께서 바라시는 아름다운 세상과는 점점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께서 또다시 분노를 터트리시기 전에 그리스도인이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올바른 몫을 선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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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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