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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30) 함께할 영성과 그리스도적 실천의 기회로 삼아야

올바른 경제활동의 목적 망각하지 말자/ 가난한 이들의 경제문제뿐 아니라 영성적인 면까지 고려해 다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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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일찍이 접해보지 못했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생겨난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새로운 분수령 앞에 서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가난’을 떨쳐보고자 자유무역이라는 방편을 선택한 나라의 사람들은 이 미증유의 사태가 자신의 삶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렇듯 한 사회 전체가 맞닥뜨리게 되는 고비나 위기는 늘 새로운 세상을 향한 불안한 가능성을 지니고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게 됩니다. 같은 출발선 위에 서있다고 하더라도 수동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로 주어지는 상황에 몸을 내맡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삶을 향한 정신적 무장과 실천으로 헤쳐 나갈 것인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게 분명합니다.

많은 나라들이 체결한 FTA를 둘러싼 관계들 속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존재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차지하려고 경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에 더 많은 어둠이 드리우게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생존이 걸린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쪽도 양보하기가 쉽지 않고, 이로 인해 불평등이 내재되어 폭발할 가능성이 어느 영역에서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FTA라는 틀 안에서는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윈-윈 전략’이 통하기가 힘들고 한쪽이 극심한 곤경에 허덕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미 FTA를 체결한 나라들의 상황을 돌아봐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92년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멕시코는 이 협정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등 국가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NAFTA 발효 후 현재까지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점진적으로 하락해 양극화가 더 심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도 NAFTA가 발효되기 이전의 절반 수준인 3대에 머물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도 반대로 떨어져 삶의 질은 예전보다 못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또한 NAFTA 발효 후 10여년 사이에 농촌에서 500만 명이 넘는 실업자가 발생해 농업이 사실상 붕괴상태에 처했을 뿐 아니라, 매년 30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미국 국경을 넘어 불법이민자 신분으로 전락하는 등 머리 아픈 사회문제를 낳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NAFTA로 미국식 의료체계가 도입되면서 국가적 의료시스템마저 붕괴되어 가난한 사람들은 심각하게 아프지 않으면 병원 갈 생각도 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유무역협정은 각 나라와 지역의 상황과 맞물려 예기치 못한 다양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림자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 더 짙게 드리우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 섰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라면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도 더 가난한 이들을 향해 열려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어떤 특정 조직의 이념이나 이해관계만을 내세우게 될 때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의 경제문제뿐 아니라 영성적인 면까지 고려해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경제는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사다리이자 발판일 뿐, 그 자체가 결코 삶의 목표나 본질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제는 그동안 우리가 형성해 온 문명에서 인간성을 풍요롭게 해주는 중요한 영역이기에 결코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창조적 지혜를 총동원해서 사회 전체의 정신적 만족과 영성적 성숙의 끈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곧 경제활동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목적의식을 망각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인류가 역사문화적으로 축적된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깊이 가슴에 새기는 가운데, 인류 공동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공동선을 지향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 건설을 위해 교회가 가르치는 지상재화와 경제생활의 규범과 원리를 실천하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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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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